"아까시나무야, 오해해서 미안해"
이번 이야기 주제는 아카시나무입니다. 꿀벌이니, 산림청이니, 항공방제니, 생태계 파괴니, 몹쓸나무니 하는거 다 뒤로 합니다. 오직 우리 어린 시절 그 향기, 그 꽃, 그 추억 만을 생각합니다.
어릴 적 5월이 되면 온 동네와 산기슭을 하얗게 뒤덮고,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지럽히던 그 달콤한 향기를 기억하십니까?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산에 오르면, 하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꽃들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가시를 조심조심 피해 꽃잎을 한 움큼 따서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번지던 달달한 그 맛. 어떤 이들은 가시를 떼어내고 코끝에 붙여 코뿔소 놀이를 하기도 했고, 잎사귀를 하나씩 떼어내며 ‘사랑한다, 안 한다’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이 하얀 꽃을 한 바구니 따다가 깨끗이 씻어 튀겨주기도 하셨고, 항아리에 설탕과 함께 재워 달콤한 아까시 꽃차나 효소를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유년 시절의 5월은 온통 아까시나무의 향기와 추억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고마운 나무가 천하의 몹쓸 나무, 산을 망치는 주범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번식력이 너무 강해 사방으로 씨앗이 날아가고, 무시무시한 뿌리가 무덤가까지 파고들어 조상님 묫자리를 망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목재로도 쓸모가 없고 인근의 좋은 나무들마저 굶겨 죽인다며, 우리는 날카로운 톱을 들고 아까시나무를 베어내고 뿌리째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찬란했던 5월의 향기는 산에서 조금씩 지워져 갔습니다.
하지만 과연 아까시나무는 정말 우리가 알던 대로 쓸모없는 몹쓸 나무였을까요? 오늘 산림일보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아까시나무의 억울한 누명과 놀라운 반전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실 아까시나무는 대한민국이 가장 배고프고 산이 붉게 헐벗었던 1970년대, 아무것도 자랄 수 없던 황폐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히 흙을 살려낸 고마운 구원수였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스스로 질소를 만들어내 땅을 비옥하게 다진 뒤, 정작 자신은 다른 좋은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스스로 물러나는 눈물겨운 생태계의 징검다리였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까시나무는 기후변화 시대에 온실가스를 빨아들이는 최고의 '탄소 흡수원'입니다. 놀랍게도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뛰어나다는 상수리나무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무가 워낙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건축 구조재나 고급 가구재, 바닥재로도 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먹는 국산 꿀의 무려 70% 이상을 이 아까시나무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대하는 사이, 이 나무는 묵묵히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오랜 세월 오해를 깨고, 이제 아까시나무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몹쓸 나무라며 잘라내고 뿌리 뽑았던 그 자리에, 대대적인 양묘를 거쳐 다시 푸른 숲으로 당당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돌아오게 된 배경에는 여러 사정이 얽혀있어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그 달콤한 향기를 마음껏 맡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참 반가운 일입니다.
돌아오는 봄에는 거리를 메우던 매연 대신, 산과 들을 하얗게 수놓을 아까시 꽃의 향연을 기대해 봅니다. 봄바람을 타고 번질 그 아련한 유년의 향기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오랜 세월 누명을 쓰고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아까시나무, 이제는 오해를 풀고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봐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 산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