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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산림청의 기막힌 사유림 규제 실태
<김종호 칼럼> 최근 저희 유튜브 산림일보가 보도한 '국립 치유의 숲 활용 백서' 에 한 시청자분이 아래와 같은 참으로 뼈아픈 돌직구 댓글을 남겼다. "국가가 세금으로 화려한 시설을 지어놓고 정작 사유지는 꽁꽁 묶어 방치한다. 사유림 규제만 풀면 도시 인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치유의 숲을, 왜 국민들은 차를 타고 몇 시간씩 걸려 국가 시설로만 찾아가야 하는가." 내 산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산주들의 피눈물 나는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목소리다. 요즘 커피 한 잔 값으로 작은 산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산림 재테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왜 정작 일반인들은 산을 사고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지, 그 잔인한 진실을 짚어본다. 은퇴 후 나만의 작은 숲을 가꾸거나, 산림조합 조합원이 되어 임업 소득을 올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산을 매입하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전 국토의 칠십 퍼센트가 산인 대한민국에서 임야는 아파트나 일반 토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인다. 하지만 멋진 숲을 경영해 보겠다는 로망은 산을 사는 순간, 산림청의 촘촘한 그물망 규제에 걸려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내 돈 주고 산 내 땅인데도, 나무 한 그루 마음대로 베지 못하고 길 하나 내지 못하는 철저한 규제와 감시 속에 갇히게 된다. 도시 인근의 사유림에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나 치유의 숲을 조성하고 싶어도, 허가 절차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허가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와 수많은 서류, 그리고 비용을 감당하다가 결국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평범한 일반 산주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시청자분의 지적대로, 산림청은 국민 세금을 수십, 수백억씩 쏟아부어 접근성 좋고 시설이 화려한 국립 휴양림과 치유의 숲을 도처에 짓고 있다. 국가가 세금으로 인프라를 독점하고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사유림 산주들의 자생력과 경쟁력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민간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더 가깝고, 더 훌륭한 산림 휴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규제라는 자물쇠로 잠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숨 막히는 규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임업 현장에서는 산림청의 거대한 보조금과 국책 사업 예산 쪼개기 네트워크에 줄을 댄 소수의 이른바 '기득권 카르텔'만이 그 규제의 장벽 안에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줄을 대지 못한 대다수의 사유림 산주들은 자산 가치 폭락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력감 속에 각자도생하고 있을 뿐이다. 산림 재테크의 진짜 성공은 단순히 싼값에 산을 사는 것에 있지 않다. 진짜 주인인 산주가 내 산을 자율적으로 경영하고, 그 속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산림청은 이제라도 세금으로 시장을 독점하며 생색내는 행정을 멈추어야 한다. 사유림에 채워진 무거운 규제의 족쇄를 과감히 풀고, 민간 산주들이 자율적으로 경제 수종을 심고 휴양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산을 산주에게 돌려주고 규제를 혁파하는 것, 그것만이 대한민국 산림을 진짜 돈이 되는 활기찬 경제 영토로 바꾸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 김종호산림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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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밤나무 꽃 향기
<김종호 산문> 밤나무 꽃 향기가 만발하는 5월이면 여인들이 바람이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차릴수 없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그 말에 대해 이해할수가 없으며 설령 이해 한다고 해도 인정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밤나무 만큼 진한 향기를 내는 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라일락 향기이다. 5월 봄이 무르익어갈 무렵 진달래 개나리 꽃 다 지고 목련과 장미가 꽃봉오리를 내밀즈음 산책이라도 하면 어디선가 진한 꽃향기가 느껴진다. 이때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흠흠 그 냄새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이제 그 향기가 밤나무 향기인줄 알고 밤나무를 찾지만 처음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저런 꽃도 아닌 꽃에서 이런 진한 향기가 나오다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후로 산책은 물론 운전하다 그 향기가 전해 오면 걸음을 멈추거나 차에서 내려 그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자연의 꽃들 중에서 느낄수 있는 이만한 향기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머리가 띵할 정도의 향기이다. 향기에 취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향기를 좋지 않게 해석하여 회자되고 있다. 이 현상을 2가지로 해석할수 있다. 먼저 향기가 너무 진하다 보니 역겨울수 있다. 두번째는 그 향기가 독특한 나머지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달라 어떤 개구쟁이 성향의 어른이 고약한 생각도 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것도 지나치면 싫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밤나무 꽃 향기도 그 향기가 향기의 도를 넘어 지나치다고 판단할수 있다. 향기가 느끼질듯 느껴지지 않을 듯, 그러니까 속옷이 보일듯 보이지 않을 듯 해야 벌나비들이 몰려들텐데, 노골적으로 보여줄 경우 놀라 도망가거나 이상한 상상을 할수 있는 것이다. 밤나무 꽃 향기는 다만 그런 차원일 뿐이다. 밤나무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향기를 극도로 발산했을 뿐인데 말이다. 또 풍성하게 꿀을 마련해서 제공했을 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밤나무는 그 꽃이 아름답지 못해서 향기를 특별하게 돋보이게 했는지 모른다. 꽃도 예쁘고 향기도 진한 꽃을 보았는가. 능력도 있고 잘 생긴 사람이 어디 흔한가. 여기서 장미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장미는 그 자태가 꽃중의 꽃이라고 할수 있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향기는 결코 진하다고 할수 없다. 어쩌면 향기가 거의 없다고도 할수 있다. 장미는 그 아름다운 자태로 인해 자신감 때문인지 모른다. 밤나무는 그꽃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향기도 제일이요 꿀 또한 제일이다. 5월이 되어 밤나무 옆을 걸어보라. 향기도 진하지만 그 밤나무엔 온갓 벌과 나비들이 몰려와 잔치를 벌이고 있다. 반면 장미꽃엔 벌나비들이 몰려 오는가. 거의 없다. 향기로 벌나비들을 유혹하지도 않지만 벌나비가 좋아하는 꿀조차 준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모양이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못한가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것을 선택하겠는가. 내실이 좋은 밤나무인가. 곁모양은 아름답지만 내실이 없는 장미인가. 대부분 장미일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으면 가시까지 가졌겠는가. 그래도 장미를 선택할 것이다. 아마 장미를 선택하는 사람은 젊은 층이고 밤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일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꾸며야 할 것이다. 밤나무와 장미 두가지를 다 가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 가질 수는 없어도 가지도록 노력을 하다보면 밤나무 꽃향기의 절반의 향기는 가질수 있고,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 근처는 갈수 있지 않겠는가. 살면서 내실을 다지고 외모 또한 꾸준히 가꾸며 살아야 할 것이다. - 김종호 건국대 졸업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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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에세이 -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종호에세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하며 살아갑니다. 대화 시간이 5분씩 주어졌을때 5분이 지난 후 어떤 사람은 기분이 별로이고 어떤 사람은 다시 대화를 하고 싶어질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부정과 긍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을 하는데 휴대폰을 보거나 주로 말을 부정하는 사람, 또는 말을 하는데 집중하거나 대부분 공감하는 사람, 여러분은 이중 누구와 다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질까요. 백이면 백 모두 후자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필자는 매주 3회 주민센터에 나가 탁구를 칩니다. 1회당 2시간이 주어집니다. 단식과 복식이 있는데 복식이 제미가 더합니다. 게임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게임을 하면서 점수 가지고 다투는 것을 종종 볼수가 있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죠. 한 사람은 5대3이라 하고 다른 사람은 5대5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부정했으니 갈등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틀린 것이죠. 그러나 이 게임은 친선게임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죠. 그래서 필자는 게임 점수를 두고 갈등이 생기면 조건없이 동점부터 시작하기를 권장합니다. 3대3부터 말이죠. 우리는 대화 중에 따지지 말고 그냥 넘어가야 할 것이 있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 분명 있습니다.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은 놀이이거나 어떤 이익과 권익 명분 같은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탁구처럼 친선 게임일 때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부동산 계약이나 어떤 약속 등 나와 연관이 있는 대화일 경우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도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냇가의 물이 맑은가 흐린가를 두고도 다투고, 내일 비가 올까 말까 를 두고도 말다툼을 벌입니다. 그중 우리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터부시 합니다. 다툼의 빈도가 많거나 크게 다툴수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면 다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은 다투기도 합니다. 필자가 가장 고약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입버릇처럼 또는 습관처럼 부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 입니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에 자기 생각을 접목시켜 '아니야 아닌데 그렇지 않아' 라고 말 합니다. 이 부정적인 습관성 반응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대화의 주제로 선정해서 주고 받는 말, 그 말속에 정답이 모두 있을까요? 예를 들면 바람에게 정답이 있을까요. 비와 눈 그리고 물 바다 숲과 나무 등에도 정답이 반드시 있을까요. 아니면 사람의 행위나 습관 속에도 정답이 있을까요. 확률로 보고 보편적으로 판단할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아니다 라는 전면적인 부정은 잘못된 대화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연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태동하는 시기엔 그야말로 자연 상태였죠. 그 자연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연구를 통해서 또는 깨달음을 통해 보편타당한 사실을 정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그렇고 수학이 그렇고 문자도 그렇습니다. 자연의 실타래 같은 오묘한 세계에서 우리 인간이 알아낸 정답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극소수 일 것입니다. 그 극소수라는 범위는 하늘의 별 같이 무한대를 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알아낸 사실은 무한대에서 먼지같은 아주 보이지도 않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답이라고 하는 정답도 완전한 정답이 아닌 변경될수 있는 정답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우리의 지식을 살펴보죠. 우리 인간들은 한때 지구는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어 배를 타고 멀리가면 낭떨어지로 떨어진다는 속설을 믿었죠. 당시엔 이 사실이 정답이죠. 이때 어느 학자가 나와 천동설이란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움직이지 않는다. 또는 태양 달 별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하는 내용이 천동설입니다. 역시 당시엔 이 주장이 정답이였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오답으로 무시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동설을 제시하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지구와 다른 행성들은 그 주위를 공전한다. 지구는 하루에 한번 자전하며 1년 1회 태양을 공전한다. 또 별들의 움직임은 실제 움직임이 아니라 지구 자전에 의한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의 당시 입장은 어땠을까요. 아마 바보 취급 아니면 미친자로 낙인이 찍혔을 것입니다. 그후 지동설이 정답이 되었죠. 이렇게 정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요. 대화 중 상대가 '바람은 물속에서 올거야' 또는 '5 더하기 5의 정답은 15' 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요. 주의할 것은 '그래도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답은 내일엔 오답이 될수 있으며 우리가 사는 자연은 오묘하고 변화무쌍해서 정답으로 확정하기엔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죠. 때문에 이럴땐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고 질문하는 것이 대화의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상식이나 정보 또는 지식은 영원한 것이 아닐수 있죠. 잘못 알고 있거나 변할수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막힌 사람' 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입니다. 이 마음이 닫힌 사람이 국가 지도자라면 국가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망할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조 말엽 대원군 같은 사람이죠. 또 개인이라면 그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한 나머지 실패자를 넘어 폐인도 될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상대방의 말에 대해 '아닐걸 아니야' 하는 부정적인 대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우리는 늘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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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산다는 것은
<김종호 산문> 내가 아는 넝쿨 오이는 마디오이와 노각이 있다. 이들 오이는 같은 오이 종류이면서 상당히 다르다. 마디오이는 일찍 오이를 매달고 노각은 뒤늦게 오이를 매다는 것이 대표적인 다름이다. 또 노각이 마디오이 보다 그 몸집이 크다. 어떤 오이가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고 같은 오이이면서 생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디오이는 외래종이다. 노각은 조선오이라고 해서 우리 고유의 재래종인가 보다. 그렇다면 오랬동안 성장 환경이 달라서 지금의 특성이 생겼으리라. 마디오이는 뿌리가 안정되면서 바로 오이를 매단다. 막 떡잎에서 벗어나 잎이 서너장 생기는 시기이다. 마디마디 열려서 마디오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6월들어 무수히 오이를 매달다가 7월 장마가 시작되면 그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노균병이라는 이파리 마름병에 걸려 고사되고 만다. 6월이 마디오이의 전성기로 최적의 기간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잘 키우면 한 오이 줄기에서 1백개 가까이 오이를 생산할수도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생존 능력이다. 반면에 노각은 마디오이 끝마무리 단계인 7월이 다 되어서야 열리기 시작한다. 날자로 보자면 6월 중순부터 오이가 달린 꽃이 보인다. 이때쯤엔 노각의 원순 길이가 3미터는 되고 곁순을 제거하지 않으면 노각 숲을 이룬다. 그 성장이 충격적이다. 수많은 숫꽃을 피우기는 하지만 정작 오이가 달리는 암꽃은 찾아보기 힘드는 시기이다. 7월 중순이후를 여름이라고 본다면 이때의 노각무침은 그야말로 별미이다. 더운 여름에 상큼한 노각무침을 먹는 맛에 대해 친구는 '흙탕물이 빠져 나가고 맑은 물이 들어오는 느낌' 이라고 표현한다. 보통 노각무침의 그 맛은 아주 깔끔하다는 평이다. 아주 개운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때의 노각무침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재래시장을 일부러 방문 노각 몇개씩 구입한다. 노각 몇개를 배낭에 넣는 노인을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곤 한다. 노각은 마디오이와 달리 장마를 통해 노균병에 걸리더라도 생장점은 계속 자라면서 오이를 매단다. 노균병을 이겨내는 것이다. 우리는 마디오이를 제때에 따지 않고 내버려 두면 노각처럼 노랗게 되는데 이 오이를 늙은오이라고 말한다. 그 크기가 노각보다 좀 작다. 그렇다면 늙은 오이를 노각무침 대용으로 해서 먹으면 어떤가. 이렇게 먹을 경우 노각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때문에 노각무침은 꼭 노각으로 만든다. 조선시대엔 조선오이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이 하면 노각 밖에 없었는데 어느날 마디 오이가 들어와 조선오이 그 자리를 차지 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주변엔 마디오이가 대부분 차지했다. 마디 오이는 일찍 오이를 매달고 재배가 용이해서 그런 것일까. 이에따라 이제 노각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다. 수요가 적어 간간히 재배되어 유통되고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 식료품에 가봐도 조선오이는 찾아 보기 어렵다. 그래도 나이 드신 분 중에는 이 노각의 맛을 잊지 못해 해마다 텃밭에 재배하기도 한다. 필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좋아해서 해마다 텃밭에 5개정도는 키운다. 5개의 모종에서 잘 하면 25개의 노각을 얻을수 있다. 농작물의 생육은 특별한 것이 없다. 생육환경을 잘 조성해 주면 된다. 그밖에 병충해를 잡아 주어야 하는데 취미로 농사짓는 필자로서는 병충해는 포기했다. 생육환경이란 일단 거름을 풍족하게 주어야 한다. 흙반 거름반 이라고 주로 말한다. 그만큼 거름이 중요하다. 다음에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하고 물 역시 충분해야 한다. 이 정도면 노각은 엄청나게 많이 달린다. 노각이 열리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노각을 따 노란 껍질을 벗긴다음 칼국수 만큼의 두께로 자른다. 소금에 절인 다음 고추장에 식초를 넣어 시큼한 맛이 나오도록 버무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버무린 노각 무침은 아내는 물론 아들까지 좋아해서 난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노각 서너개는 순식간에 동이 난다. 서너개 요리해 보았자 껍질 벗기고 속 버리고 살을 가지고 버무리는데 그 양이 많지가 않다. 이 노각을 보면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린시절 농촌에서 자란 대학 친구이다. 어느날 당구를 친 다음 저녁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 노각 반찬이 나온 것이다. 그 친구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는 맛도 볼수가 없었다. 해마다 노각 철이 되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이런 노각의 맛은 요즘 사람들에게 별로인것 같다. 노각을 찾아 볼수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음식도 달라진다. 어디 오이만이 그런가. 고구마 감자 호박 등 대부분의 작물에서 외래종이 들어와 우리 음식이 되었다. 이들 농작물은 재래종이 된 이후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노각 처럼 이종과 경쟁하다 밀린 품종도 많다. 식물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다. 기상천외한 방식이 많다. 민들래나 고들빼기 같은 식물은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면서 멀리 멀리 번식을 한다. 사과나 배 복숭아 등 과실나무들은 동물들의 입맛에 아주 잘 맞는 과즙을 만들어 낸다. 그 과즙을 먹게해서 씨앗을 널리 전파한다. 오이나 노각 등은 역시 맛으로 운명을 건 식물들이다. 그 과즙을 좋아하는 동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자손은 더욱 번식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각은 분명 외래종인 마디오이에게 밀려나는 형국이다. 특이한 맛을 추구하는 일부 사람이 찾기는 하지만 이제 시장에서조차 노각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이처럼 식물도 식물 나름대로 변화를 주지 않으면 유입된 품종에게 자리를 빼앗겨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보다. 멸종까지 이르게 될수도 있다니 식물이나 동물이나 세상 살기가 만만치가 않다.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대단해야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대한민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기온 변화에 잘 적응하며 사는 민족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DNA가 충분히 적립되어 있다. 적응은 번영 능력이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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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인간관계
<김종호 산문> 인간관계, 이 말을 듣는순간 긴장이 됩니다. 한순간에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제 다 손 놓고 먼산 바라보는 입장이지만, 이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이등병 군기처럼 마음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는 것이죠. 어느 동물은 군집해서 살기도 하고, 어느 동물은 홀로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은 분명 군집해서 사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강합니다. 강한 것은 군집해 사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강해도 홀로 있으면 강하지 않죠. 군집된 사람들은 하늘도 놀라고 땅도 기절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군집된 상태라면 분명 개개의 운명은 그 군집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입니다. 군집 사회에서는 늘 인간관계가 성립됩니다. 거기에서 인간관계가 그만큼 중요하죠.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말을 들으면 헛웃음이 먼저 나오게 됩니다. 그 인간관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단순한 것이 아니겠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여러가지잖아요. 사람을 만나면 1차로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꽃으로 비유하면 무슨 꽃이며 어떤 색인지 인지할 정도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겠죠. 외모는 키와 몸무게 얼굴 옷차림 등이 핵심일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옷차림은 변수가 많아요. 잘 차려 입어야 하는지 편하게 입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차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2차판단은 또 무엇인가요. 대화를 말할 것입니다. 대화를 꽃으로 비유하면 향기라고 정할께요. 역시 꽃의 향기도 1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죠. 또 외모와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장미는 참으로 아름다운데 향기가 없거나 미미합니다. 밤나무는 꽃은 보잘것 없으나 그 향기는 찬란합니다. 여기서 필자는 밤나무를 선호합니다. 외모는 보잘것 없으나 말에서 찬란한 향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옷은 수수하게 입었으나 대화를 해 보니 향기가 진동하는 사람, 참으로 멋진 분이죠. 그래서 외모가 먼저일까 말이 먼저일까를 놓고 따진다면 말이 먼저라고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모도 무시할수 없죠. 때문에 밤나무는 좋은 대인관계를 위해 외모를 가꾸는데도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꽃에서 나는 냄새는 대부분 향기이지만 사람에게서 나는 말의 냄새는 향기도 될수 있고 악취도 될수 있죠. 부드러운 바람도 될수 있고 늦가을 서리도 될수 있죠. 그것뿐인가요. 비온뒤 맑은 하늘이 될수 있고, 내일 만나는 연인처럼 설레임도 될수 있습니다. 그만큼 말은 그 사람의 비중 차원에서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말을 두고 폭력이라고 확대까지 할까요. 3차 판단은 행동양식이라고 하죠. 꽃으로 비유하면 꿀이 얼마나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인격이라 해도 됩니다. 약속은 잘 지키는가, 배려는 많은가, 책임은 강한가, 존중심은 얼마나 있는가 등이 될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인 자립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도 그 사람의 인격이 될수가 있죠. 사람의 돈과 꽃의 꿀은 같은 맥락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돈을 선호하기 때문이고,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간 관계가 필수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잡한 인간관계도 연령별로 성별로 또는 직업별로 모두 다르겠죠. 특히 인간관계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분야가 직업 중에서 사업분야가 될 것입니다. 필자는 종이 신문사를 창간해서 15년동안 운영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서 인간의 속성을 많이도 경험했죠. 철부지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봐요. 신문사 경영도 역시 인간관계가 중요했죠. 인사와 겸손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죽하면 현장에서는 15도로 고개 숙이고 다니라고 할까요. 사실 사업자 만나 인사만 잘 해도 광고가 나오고, 30도로 머리를 숙이면 광고가 연장됩니다. 더구나 '80도로 허리까지 숙이고 인사하면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고, 그 다음엔 광고주가 광고주를 줄줄이 모시고 온다' 라고 전 웃으며 말하곤 했지요. 여기서 깨달은 것은 '사업을 하려면 만만한 사람이 되자' 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만만하게 보아야 한다 는 것이죠. 첫 만남 부터 부담이 되면 안되고 계속 만나면서도 부담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부담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투 억양 목소리톤 몸짓 손짓 얼굴표정 행동 약속 여러가지가 있지요. 특히 대화 내용입니다. 돈자랑 힘자랑 하면 안되죠. 아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도 사업이 성공하여 직원 수십명 거느리다 보면, 그때부터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몸놀림이 사장으로 변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입니다. 열대우림지역의 원숭이가 대장이 되면 등에 황금색의 털이 난다고 하죠. 이때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사업하는 사람은 만만하게 보여야 사람들이 따르고 정도 주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억지로 한다고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업은 아무나 하나 장사는 아무나 하나' 라는 말이 생긴 모양입니다. 사업도 적성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관계가 좋아야 사업을 할수 있는 적성을 가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활이 자기 적성에 잘 맞아 사람 만나는 그 시간 시간들을 즐기는 것이죠. 즐기면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억지로 웃고 인사하고 아양을 떨다보면 이것도 한두번이지 일년 이년 삼년 계속할수는 없는 것이죠. 병이 들어 죽을 고비를 맞이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목재신문 하면서 사업적으로 존경하고 싶은 사람 3분을 만났습니다. 모두 목재기업을하죠. 모두 목재 가공하시는 분입니다. 이 3분의 공통점은 인자하고 여유있고 자신감이 있고 아주 편하다는 것입니다. 만나면 우선 식사여부부터 묻고 사업에 이어 건강까지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표명합니다. 다음이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죠. 이야기 내내 필자에게 도움이 되는 광고나 구독 또는 어떤 정보를 제공합니다. 만나면 꼭 한두가지는 얻게 되죠. 그러니 자꾸 그분들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작은 기업이 아닙니다. 목재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이죠. 모두 기술기업입니다. 오죽하면 내 자식을 이 회사에 입사 시켜서 이분들의 인격과 사업마인드를 전수케 하려는 생각까지 하겠습니까. 몰론 저도 많이 배웠죠. 이분들에 대해 전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교수 선생님 아니면 우리 삼촌 같다 고 말입니다. 얼굴 표정이 그렇습니다. 그 얼굴 표정에서 장삿꾼 냄새가 전혀 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업 창업주로서 그만큼 일으켰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나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능구렁이들' 이라고 말입니다. 어느날 그분의 자녀 결혼식 청첩장이 우편으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그 현장을 보고 하마트면 놀라 뒤로 자빠질뻔 했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줄서 있는 사람들의 거리가 아마 100미터는 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님과 결혼하는 아들 그리고 딸과 사위 등 온가족이 일렬로 서서 큰 인사를 하며 손님을 맞이 하는 것도 인상 깊었죠.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홀로 살기는 힘듭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죠. 새나 곤충 나무 풀 등도 바람이 있어야 창공을 날거나 번식을 하거나 꽃을 피우게 되죠. 자연에서 바람이 없으면 그 자연은 망가질 것입니다. 사람도 나를 이끌어 주는 바람이 있어야 창공을 높고 깊게 날수 있다는 생각을 지을수 없습니다. 홀로의 노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는 바로 자연의 바람입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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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김종호 에세이> 이번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값싼 소주라는 술에 중독이 되어 병을 얻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올 봄 초 토요일 지인과 등산을 한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 속을 2시간 넘게 걸었지요. 지인이라고 하지만 사업관계로 만난 분입니다. 제가 신문사 운영 할때 제 신문에 광고를 무려 10년동안 전면으로 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실 상부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의 가슴엔 저울 두세개는 들어 있으니까요. 사업자는 생활 자체가 저울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을 운영할수 있겠죠. 서로 고마운 관계입니다. 이 분과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에서 건강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지요. 1년 전 만해도 청년 같던 그 분은 요즘 매일 각각 다른 약 3봉지나 먹는다고 합니다. 혈압 등 성인병입니다. 그중에 간장 약이 들어 있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생긴 증상으로 먹는 약입니다. 또 어깨와 무릅까지 아프다고 합니다. 이 증상은 혹시 골프에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골프 중단 권유를 한적이 있지요. 이 분은 사업이 크게 성공하여 부자입니다. 앞으로 30년을 벌지 않고 쓴다 해도 그 재물이 바닥이 나지 않고 더 불어날 상황입니다. 그런 분이 뭐가 부족해서 매일 소맥을 마실까요. 한번 마시면 소주 두세 병이니 말입니다. 병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요. 언젠가 만났을땐 건강을 위해 술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가워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었지요. 그때 얼굴을 보니 눈동자가 풀리고 두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것입니다. 만날 때마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도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날 그런 모습을 보니 처량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술을 마시게 되더군요. 물론 혼자는 마시지 않아요. 바람이 불면 바람 분다며 춤추는 장미를 불러내고, 겨우내 얼었던 참나무가 초록 얼굴을 내민다고 등산화 신은 진달래를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얼굴이 크고 목젖이 보이는 호박꽃을 불러내서 함께 술을 마시곤 합니다. 남자가 왜 술에 중독될까요? 분명 술이 나쁘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 마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가지 원인으로 분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방황이며 둘은 놀이가 유흥에 한정되고 자극적이라는 것이죠. 이에 대한 처방은 자신의 인연을 운명으로 봐야 하고, 놀이는 유흥을 중단하고 정서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하고 말입니다. 농담이라고 하지만 의미있는 말이지요. 이 말이 술을 마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분은 세상 어딘가에 자기 마음에 딱 드는 달, 자기와 참 잘 맞는 그런 달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 달을 찾고 있는 것 같았어요. 노을처럼 매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죠. 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는데 자꾸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두고 내가 누구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사내는 방황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바다를 떠돌며 인어를 찾는 갈매기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달을 만나 매일 수평선에서 노는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보호색이 강합니다. 그 보호색으로 인해 언행불일치가 나옵니다. 욕망도 빼놓을수 없죠. 그 욕망으로 인해 사기 질투 음해 폭력 등의 행동이 나옵니다.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믿음과 신용으로 만나는 관계 정립이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그 믿음은 한정적일지도 모르죠. 이 세상 살면서 '진실한 친구 1명만 있어도 행운' 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홀로 외롭게 사는 것이 운명인지도 모르죠. 필요할때마다 만났다가 이별을 하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어릴땐 부모형제가 세상의 다였는데, 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이 생겨나죠. 이렇게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친구관계가 거의 전부입니다. 직장에 다니면 직장 동료 또는 거래처 등의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해서 그때 그때 사람을 만난다' 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저 개인적으로 보면 알고 지내던 사람이 무려 수천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많았으나, 은퇴한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사람을 만납니다. 그 손가락으로 꼽히는 사람조차 이제 서서히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죠. 결국엔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끼리 어울립니다. 이 사람들도 집이 멀어지거나 다른 이유가 발생할 경우 만나지 않게 될 확률이 많을 것입니다. 형제간이라도 부산과 강릉 등 멀리 살 경우 얼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이렇다면 이 세상엔 '나와 마음이 딱 맞는 사람' 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 '지고 지순한 관계'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달을 만나고 인어를 만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 맞추어 가면서 살아간다' 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그러니 그 분처럼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분은 분명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엔 그런 사람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의 행동이 방황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을 마시며 즐기는 그 순간에도 방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잘 알면서도 마치 홀린 것처럼 반복적으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나 봅니다. 그것을 우리는 '중독'이라고 하죠. 담배와 술이 대표적입니다. 어떤 분은 경마를 하고 어떤 분은 도박까지 손을 댑니다. 중독의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습니다. 건강도 사업도 말이죠. 다행히 그분은 나이가 들면서 산책으로 소일 하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어쩌면 어쩔수 없어서 하는 경우라는 생각이 들죠. 늙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과거처럼 밤샘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젠가 함께 산책하기 위해 아침 일찍 그 분을 만나 보니 조찬을 집 근처 맞춤 식당에서 해결하더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제 정리를 하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역동적입니다. 순환적이죠. 바위처럼 늘 그곳에 있지 않죠. 물처럼 흐릅니다. 기대를 한만큼 실망이 꼭 그만큼 옵니다. 달이기를 바라면 달만큼, 인어이기를 바라면 그 인어만큼 실망이 옵니다. 때문에 기대를 줄이고 산다면 큰 방황이나 충격 없이 호수처럼 지낼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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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산림청의 기막힌 사유림 규제 실태
- <김종호 칼럼> 최근 저희 유튜브 산림일보가 보도한 '국립 치유의 숲 활용 백서' 에 한 시청자분이 아래와 같은 참으로 뼈아픈 돌직구 댓글을 남겼다. "국가가 세금으로 화려한 시설을 지어놓고 정작 사유지는 꽁꽁 묶어 방치한다. 사유림 규제만 풀면 도시 인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치유의 숲을, 왜 국민들은 차를 타고 몇 시간씩 걸려 국가 시설로만 찾아가야 하는가." 내 산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산주들의 피눈물 나는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목소리다. 요즘 커피 한 잔 값으로 작은 산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산림 재테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왜 정작 일반인들은 산을 사고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지, 그 잔인한 진실을 짚어본다. 은퇴 후 나만의 작은 숲을 가꾸거나, 산림조합 조합원이 되어 임업 소득을 올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산을 매입하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전 국토의 칠십 퍼센트가 산인 대한민국에서 임야는 아파트나 일반 토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인다. 하지만 멋진 숲을 경영해 보겠다는 로망은 산을 사는 순간, 산림청의 촘촘한 그물망 규제에 걸려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내 돈 주고 산 내 땅인데도, 나무 한 그루 마음대로 베지 못하고 길 하나 내지 못하는 철저한 규제와 감시 속에 갇히게 된다. 도시 인근의 사유림에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나 치유의 숲을 조성하고 싶어도, 허가 절차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허가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와 수많은 서류, 그리고 비용을 감당하다가 결국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평범한 일반 산주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시청자분의 지적대로, 산림청은 국민 세금을 수십, 수백억씩 쏟아부어 접근성 좋고 시설이 화려한 국립 휴양림과 치유의 숲을 도처에 짓고 있다. 국가가 세금으로 인프라를 독점하고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사유림 산주들의 자생력과 경쟁력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민간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더 가깝고, 더 훌륭한 산림 휴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규제라는 자물쇠로 잠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숨 막히는 규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임업 현장에서는 산림청의 거대한 보조금과 국책 사업 예산 쪼개기 네트워크에 줄을 댄 소수의 이른바 '기득권 카르텔'만이 그 규제의 장벽 안에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줄을 대지 못한 대다수의 사유림 산주들은 자산 가치 폭락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력감 속에 각자도생하고 있을 뿐이다. 산림 재테크의 진짜 성공은 단순히 싼값에 산을 사는 것에 있지 않다. 진짜 주인인 산주가 내 산을 자율적으로 경영하고, 그 속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산림청은 이제라도 세금으로 시장을 독점하며 생색내는 행정을 멈추어야 한다. 사유림에 채워진 무거운 규제의 족쇄를 과감히 풀고, 민간 산주들이 자율적으로 경제 수종을 심고 휴양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산을 산주에게 돌려주고 규제를 혁파하는 것, 그것만이 대한민국 산림을 진짜 돈이 되는 활기찬 경제 영토로 바꾸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 김종호산림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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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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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산림청의 기막힌 사유림 규제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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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밤나무 꽃 향기
- <김종호 산문> 밤나무 꽃 향기가 만발하는 5월이면 여인들이 바람이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차릴수 없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그 말에 대해 이해할수가 없으며 설령 이해 한다고 해도 인정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밤나무 만큼 진한 향기를 내는 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라일락 향기이다. 5월 봄이 무르익어갈 무렵 진달래 개나리 꽃 다 지고 목련과 장미가 꽃봉오리를 내밀즈음 산책이라도 하면 어디선가 진한 꽃향기가 느껴진다. 이때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흠흠 그 냄새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이제 그 향기가 밤나무 향기인줄 알고 밤나무를 찾지만 처음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저런 꽃도 아닌 꽃에서 이런 진한 향기가 나오다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후로 산책은 물론 운전하다 그 향기가 전해 오면 걸음을 멈추거나 차에서 내려 그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자연의 꽃들 중에서 느낄수 있는 이만한 향기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머리가 띵할 정도의 향기이다. 향기에 취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향기를 좋지 않게 해석하여 회자되고 있다. 이 현상을 2가지로 해석할수 있다. 먼저 향기가 너무 진하다 보니 역겨울수 있다. 두번째는 그 향기가 독특한 나머지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달라 어떤 개구쟁이 성향의 어른이 고약한 생각도 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것도 지나치면 싫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밤나무 꽃 향기도 그 향기가 향기의 도를 넘어 지나치다고 판단할수 있다. 향기가 느끼질듯 느껴지지 않을 듯, 그러니까 속옷이 보일듯 보이지 않을 듯 해야 벌나비들이 몰려들텐데, 노골적으로 보여줄 경우 놀라 도망가거나 이상한 상상을 할수 있는 것이다. 밤나무 꽃 향기는 다만 그런 차원일 뿐이다. 밤나무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향기를 극도로 발산했을 뿐인데 말이다. 또 풍성하게 꿀을 마련해서 제공했을 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밤나무는 그 꽃이 아름답지 못해서 향기를 특별하게 돋보이게 했는지 모른다. 꽃도 예쁘고 향기도 진한 꽃을 보았는가. 능력도 있고 잘 생긴 사람이 어디 흔한가. 여기서 장미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장미는 그 자태가 꽃중의 꽃이라고 할수 있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향기는 결코 진하다고 할수 없다. 어쩌면 향기가 거의 없다고도 할수 있다. 장미는 그 아름다운 자태로 인해 자신감 때문인지 모른다. 밤나무는 그꽃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향기도 제일이요 꿀 또한 제일이다. 5월이 되어 밤나무 옆을 걸어보라. 향기도 진하지만 그 밤나무엔 온갓 벌과 나비들이 몰려와 잔치를 벌이고 있다. 반면 장미꽃엔 벌나비들이 몰려 오는가. 거의 없다. 향기로 벌나비들을 유혹하지도 않지만 벌나비가 좋아하는 꿀조차 준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모양이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못한가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것을 선택하겠는가. 내실이 좋은 밤나무인가. 곁모양은 아름답지만 내실이 없는 장미인가. 대부분 장미일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으면 가시까지 가졌겠는가. 그래도 장미를 선택할 것이다. 아마 장미를 선택하는 사람은 젊은 층이고 밤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일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꾸며야 할 것이다. 밤나무와 장미 두가지를 다 가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 가질 수는 없어도 가지도록 노력을 하다보면 밤나무 꽃향기의 절반의 향기는 가질수 있고,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 근처는 갈수 있지 않겠는가. 살면서 내실을 다지고 외모 또한 꾸준히 가꾸며 살아야 할 것이다. - 김종호 건국대 졸업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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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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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밤나무 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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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에세이 -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 <김종호에세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하며 살아갑니다. 대화 시간이 5분씩 주어졌을때 5분이 지난 후 어떤 사람은 기분이 별로이고 어떤 사람은 다시 대화를 하고 싶어질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부정과 긍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을 하는데 휴대폰을 보거나 주로 말을 부정하는 사람, 또는 말을 하는데 집중하거나 대부분 공감하는 사람, 여러분은 이중 누구와 다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질까요. 백이면 백 모두 후자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필자는 매주 3회 주민센터에 나가 탁구를 칩니다. 1회당 2시간이 주어집니다. 단식과 복식이 있는데 복식이 제미가 더합니다. 게임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게임을 하면서 점수 가지고 다투는 것을 종종 볼수가 있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죠. 한 사람은 5대3이라 하고 다른 사람은 5대5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부정했으니 갈등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틀린 것이죠. 그러나 이 게임은 친선게임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죠. 그래서 필자는 게임 점수를 두고 갈등이 생기면 조건없이 동점부터 시작하기를 권장합니다. 3대3부터 말이죠. 우리는 대화 중에 따지지 말고 그냥 넘어가야 할 것이 있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 분명 있습니다.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은 놀이이거나 어떤 이익과 권익 명분 같은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탁구처럼 친선 게임일 때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부동산 계약이나 어떤 약속 등 나와 연관이 있는 대화일 경우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도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냇가의 물이 맑은가 흐린가를 두고도 다투고, 내일 비가 올까 말까 를 두고도 말다툼을 벌입니다. 그중 우리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터부시 합니다. 다툼의 빈도가 많거나 크게 다툴수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면 다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은 다투기도 합니다. 필자가 가장 고약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입버릇처럼 또는 습관처럼 부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 입니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에 자기 생각을 접목시켜 '아니야 아닌데 그렇지 않아' 라고 말 합니다. 이 부정적인 습관성 반응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대화의 주제로 선정해서 주고 받는 말, 그 말속에 정답이 모두 있을까요? 예를 들면 바람에게 정답이 있을까요. 비와 눈 그리고 물 바다 숲과 나무 등에도 정답이 반드시 있을까요. 아니면 사람의 행위나 습관 속에도 정답이 있을까요. 확률로 보고 보편적으로 판단할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아니다 라는 전면적인 부정은 잘못된 대화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연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태동하는 시기엔 그야말로 자연 상태였죠. 그 자연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연구를 통해서 또는 깨달음을 통해 보편타당한 사실을 정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그렇고 수학이 그렇고 문자도 그렇습니다. 자연의 실타래 같은 오묘한 세계에서 우리 인간이 알아낸 정답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극소수 일 것입니다. 그 극소수라는 범위는 하늘의 별 같이 무한대를 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알아낸 사실은 무한대에서 먼지같은 아주 보이지도 않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답이라고 하는 정답도 완전한 정답이 아닌 변경될수 있는 정답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우리의 지식을 살펴보죠. 우리 인간들은 한때 지구는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어 배를 타고 멀리가면 낭떨어지로 떨어진다는 속설을 믿었죠. 당시엔 이 사실이 정답이죠. 이때 어느 학자가 나와 천동설이란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움직이지 않는다. 또는 태양 달 별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하는 내용이 천동설입니다. 역시 당시엔 이 주장이 정답이였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오답으로 무시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동설을 제시하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지구와 다른 행성들은 그 주위를 공전한다. 지구는 하루에 한번 자전하며 1년 1회 태양을 공전한다. 또 별들의 움직임은 실제 움직임이 아니라 지구 자전에 의한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의 당시 입장은 어땠을까요. 아마 바보 취급 아니면 미친자로 낙인이 찍혔을 것입니다. 그후 지동설이 정답이 되었죠. 이렇게 정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요. 대화 중 상대가 '바람은 물속에서 올거야' 또는 '5 더하기 5의 정답은 15' 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요. 주의할 것은 '그래도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답은 내일엔 오답이 될수 있으며 우리가 사는 자연은 오묘하고 변화무쌍해서 정답으로 확정하기엔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죠. 때문에 이럴땐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고 질문하는 것이 대화의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상식이나 정보 또는 지식은 영원한 것이 아닐수 있죠. 잘못 알고 있거나 변할수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막힌 사람' 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입니다. 이 마음이 닫힌 사람이 국가 지도자라면 국가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망할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조 말엽 대원군 같은 사람이죠. 또 개인이라면 그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한 나머지 실패자를 넘어 폐인도 될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상대방의 말에 대해 '아닐걸 아니야' 하는 부정적인 대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우리는 늘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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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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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에세이 -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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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산다는 것은
- <김종호 산문> 내가 아는 넝쿨 오이는 마디오이와 노각이 있다. 이들 오이는 같은 오이 종류이면서 상당히 다르다. 마디오이는 일찍 오이를 매달고 노각은 뒤늦게 오이를 매다는 것이 대표적인 다름이다. 또 노각이 마디오이 보다 그 몸집이 크다. 어떤 오이가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고 같은 오이이면서 생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디오이는 외래종이다. 노각은 조선오이라고 해서 우리 고유의 재래종인가 보다. 그렇다면 오랬동안 성장 환경이 달라서 지금의 특성이 생겼으리라. 마디오이는 뿌리가 안정되면서 바로 오이를 매단다. 막 떡잎에서 벗어나 잎이 서너장 생기는 시기이다. 마디마디 열려서 마디오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6월들어 무수히 오이를 매달다가 7월 장마가 시작되면 그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노균병이라는 이파리 마름병에 걸려 고사되고 만다. 6월이 마디오이의 전성기로 최적의 기간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잘 키우면 한 오이 줄기에서 1백개 가까이 오이를 생산할수도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생존 능력이다. 반면에 노각은 마디오이 끝마무리 단계인 7월이 다 되어서야 열리기 시작한다. 날자로 보자면 6월 중순부터 오이가 달린 꽃이 보인다. 이때쯤엔 노각의 원순 길이가 3미터는 되고 곁순을 제거하지 않으면 노각 숲을 이룬다. 그 성장이 충격적이다. 수많은 숫꽃을 피우기는 하지만 정작 오이가 달리는 암꽃은 찾아보기 힘드는 시기이다. 7월 중순이후를 여름이라고 본다면 이때의 노각무침은 그야말로 별미이다. 더운 여름에 상큼한 노각무침을 먹는 맛에 대해 친구는 '흙탕물이 빠져 나가고 맑은 물이 들어오는 느낌' 이라고 표현한다. 보통 노각무침의 그 맛은 아주 깔끔하다는 평이다. 아주 개운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때의 노각무침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재래시장을 일부러 방문 노각 몇개씩 구입한다. 노각 몇개를 배낭에 넣는 노인을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곤 한다. 노각은 마디오이와 달리 장마를 통해 노균병에 걸리더라도 생장점은 계속 자라면서 오이를 매단다. 노균병을 이겨내는 것이다. 우리는 마디오이를 제때에 따지 않고 내버려 두면 노각처럼 노랗게 되는데 이 오이를 늙은오이라고 말한다. 그 크기가 노각보다 좀 작다. 그렇다면 늙은 오이를 노각무침 대용으로 해서 먹으면 어떤가. 이렇게 먹을 경우 노각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때문에 노각무침은 꼭 노각으로 만든다. 조선시대엔 조선오이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이 하면 노각 밖에 없었는데 어느날 마디 오이가 들어와 조선오이 그 자리를 차지 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주변엔 마디오이가 대부분 차지했다. 마디 오이는 일찍 오이를 매달고 재배가 용이해서 그런 것일까. 이에따라 이제 노각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다. 수요가 적어 간간히 재배되어 유통되고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 식료품에 가봐도 조선오이는 찾아 보기 어렵다. 그래도 나이 드신 분 중에는 이 노각의 맛을 잊지 못해 해마다 텃밭에 재배하기도 한다. 필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좋아해서 해마다 텃밭에 5개정도는 키운다. 5개의 모종에서 잘 하면 25개의 노각을 얻을수 있다. 농작물의 생육은 특별한 것이 없다. 생육환경을 잘 조성해 주면 된다. 그밖에 병충해를 잡아 주어야 하는데 취미로 농사짓는 필자로서는 병충해는 포기했다. 생육환경이란 일단 거름을 풍족하게 주어야 한다. 흙반 거름반 이라고 주로 말한다. 그만큼 거름이 중요하다. 다음에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하고 물 역시 충분해야 한다. 이 정도면 노각은 엄청나게 많이 달린다. 노각이 열리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노각을 따 노란 껍질을 벗긴다음 칼국수 만큼의 두께로 자른다. 소금에 절인 다음 고추장에 식초를 넣어 시큼한 맛이 나오도록 버무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버무린 노각 무침은 아내는 물론 아들까지 좋아해서 난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노각 서너개는 순식간에 동이 난다. 서너개 요리해 보았자 껍질 벗기고 속 버리고 살을 가지고 버무리는데 그 양이 많지가 않다. 이 노각을 보면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린시절 농촌에서 자란 대학 친구이다. 어느날 당구를 친 다음 저녁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 노각 반찬이 나온 것이다. 그 친구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는 맛도 볼수가 없었다. 해마다 노각 철이 되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이런 노각의 맛은 요즘 사람들에게 별로인것 같다. 노각을 찾아 볼수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음식도 달라진다. 어디 오이만이 그런가. 고구마 감자 호박 등 대부분의 작물에서 외래종이 들어와 우리 음식이 되었다. 이들 농작물은 재래종이 된 이후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노각 처럼 이종과 경쟁하다 밀린 품종도 많다. 식물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다. 기상천외한 방식이 많다. 민들래나 고들빼기 같은 식물은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면서 멀리 멀리 번식을 한다. 사과나 배 복숭아 등 과실나무들은 동물들의 입맛에 아주 잘 맞는 과즙을 만들어 낸다. 그 과즙을 먹게해서 씨앗을 널리 전파한다. 오이나 노각 등은 역시 맛으로 운명을 건 식물들이다. 그 과즙을 좋아하는 동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자손은 더욱 번식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각은 분명 외래종인 마디오이에게 밀려나는 형국이다. 특이한 맛을 추구하는 일부 사람이 찾기는 하지만 이제 시장에서조차 노각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이처럼 식물도 식물 나름대로 변화를 주지 않으면 유입된 품종에게 자리를 빼앗겨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보다. 멸종까지 이르게 될수도 있다니 식물이나 동물이나 세상 살기가 만만치가 않다.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대단해야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대한민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기온 변화에 잘 적응하며 사는 민족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DNA가 충분히 적립되어 있다. 적응은 번영 능력이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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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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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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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인간관계
- <김종호 산문> 인간관계, 이 말을 듣는순간 긴장이 됩니다. 한순간에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제 다 손 놓고 먼산 바라보는 입장이지만, 이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이등병 군기처럼 마음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는 것이죠. 어느 동물은 군집해서 살기도 하고, 어느 동물은 홀로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은 분명 군집해서 사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강합니다. 강한 것은 군집해 사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강해도 홀로 있으면 강하지 않죠. 군집된 사람들은 하늘도 놀라고 땅도 기절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군집된 상태라면 분명 개개의 운명은 그 군집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입니다. 군집 사회에서는 늘 인간관계가 성립됩니다. 거기에서 인간관계가 그만큼 중요하죠.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말을 들으면 헛웃음이 먼저 나오게 됩니다. 그 인간관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단순한 것이 아니겠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여러가지잖아요. 사람을 만나면 1차로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꽃으로 비유하면 무슨 꽃이며 어떤 색인지 인지할 정도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겠죠. 외모는 키와 몸무게 얼굴 옷차림 등이 핵심일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옷차림은 변수가 많아요. 잘 차려 입어야 하는지 편하게 입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차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2차판단은 또 무엇인가요. 대화를 말할 것입니다. 대화를 꽃으로 비유하면 향기라고 정할께요. 역시 꽃의 향기도 1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죠. 또 외모와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장미는 참으로 아름다운데 향기가 없거나 미미합니다. 밤나무는 꽃은 보잘것 없으나 그 향기는 찬란합니다. 여기서 필자는 밤나무를 선호합니다. 외모는 보잘것 없으나 말에서 찬란한 향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옷은 수수하게 입었으나 대화를 해 보니 향기가 진동하는 사람, 참으로 멋진 분이죠. 그래서 외모가 먼저일까 말이 먼저일까를 놓고 따진다면 말이 먼저라고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모도 무시할수 없죠. 때문에 밤나무는 좋은 대인관계를 위해 외모를 가꾸는데도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꽃에서 나는 냄새는 대부분 향기이지만 사람에게서 나는 말의 냄새는 향기도 될수 있고 악취도 될수 있죠. 부드러운 바람도 될수 있고 늦가을 서리도 될수 있죠. 그것뿐인가요. 비온뒤 맑은 하늘이 될수 있고, 내일 만나는 연인처럼 설레임도 될수 있습니다. 그만큼 말은 그 사람의 비중 차원에서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말을 두고 폭력이라고 확대까지 할까요. 3차 판단은 행동양식이라고 하죠. 꽃으로 비유하면 꿀이 얼마나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인격이라 해도 됩니다. 약속은 잘 지키는가, 배려는 많은가, 책임은 강한가, 존중심은 얼마나 있는가 등이 될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인 자립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도 그 사람의 인격이 될수가 있죠. 사람의 돈과 꽃의 꿀은 같은 맥락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돈을 선호하기 때문이고,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간 관계가 필수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잡한 인간관계도 연령별로 성별로 또는 직업별로 모두 다르겠죠. 특히 인간관계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분야가 직업 중에서 사업분야가 될 것입니다. 필자는 종이 신문사를 창간해서 15년동안 운영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서 인간의 속성을 많이도 경험했죠. 철부지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봐요. 신문사 경영도 역시 인간관계가 중요했죠. 인사와 겸손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죽하면 현장에서는 15도로 고개 숙이고 다니라고 할까요. 사실 사업자 만나 인사만 잘 해도 광고가 나오고, 30도로 머리를 숙이면 광고가 연장됩니다. 더구나 '80도로 허리까지 숙이고 인사하면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고, 그 다음엔 광고주가 광고주를 줄줄이 모시고 온다' 라고 전 웃으며 말하곤 했지요. 여기서 깨달은 것은 '사업을 하려면 만만한 사람이 되자' 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만만하게 보아야 한다 는 것이죠. 첫 만남 부터 부담이 되면 안되고 계속 만나면서도 부담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부담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투 억양 목소리톤 몸짓 손짓 얼굴표정 행동 약속 여러가지가 있지요. 특히 대화 내용입니다. 돈자랑 힘자랑 하면 안되죠. 아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도 사업이 성공하여 직원 수십명 거느리다 보면, 그때부터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몸놀림이 사장으로 변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입니다. 열대우림지역의 원숭이가 대장이 되면 등에 황금색의 털이 난다고 하죠. 이때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사업하는 사람은 만만하게 보여야 사람들이 따르고 정도 주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억지로 한다고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업은 아무나 하나 장사는 아무나 하나' 라는 말이 생긴 모양입니다. 사업도 적성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관계가 좋아야 사업을 할수 있는 적성을 가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활이 자기 적성에 잘 맞아 사람 만나는 그 시간 시간들을 즐기는 것이죠. 즐기면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억지로 웃고 인사하고 아양을 떨다보면 이것도 한두번이지 일년 이년 삼년 계속할수는 없는 것이죠. 병이 들어 죽을 고비를 맞이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목재신문 하면서 사업적으로 존경하고 싶은 사람 3분을 만났습니다. 모두 목재기업을하죠. 모두 목재 가공하시는 분입니다. 이 3분의 공통점은 인자하고 여유있고 자신감이 있고 아주 편하다는 것입니다. 만나면 우선 식사여부부터 묻고 사업에 이어 건강까지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표명합니다. 다음이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죠. 이야기 내내 필자에게 도움이 되는 광고나 구독 또는 어떤 정보를 제공합니다. 만나면 꼭 한두가지는 얻게 되죠. 그러니 자꾸 그분들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작은 기업이 아닙니다. 목재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이죠. 모두 기술기업입니다. 오죽하면 내 자식을 이 회사에 입사 시켜서 이분들의 인격과 사업마인드를 전수케 하려는 생각까지 하겠습니까. 몰론 저도 많이 배웠죠. 이분들에 대해 전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교수 선생님 아니면 우리 삼촌 같다 고 말입니다. 얼굴 표정이 그렇습니다. 그 얼굴 표정에서 장삿꾼 냄새가 전혀 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업 창업주로서 그만큼 일으켰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나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능구렁이들' 이라고 말입니다. 어느날 그분의 자녀 결혼식 청첩장이 우편으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그 현장을 보고 하마트면 놀라 뒤로 자빠질뻔 했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줄서 있는 사람들의 거리가 아마 100미터는 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님과 결혼하는 아들 그리고 딸과 사위 등 온가족이 일렬로 서서 큰 인사를 하며 손님을 맞이 하는 것도 인상 깊었죠.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홀로 살기는 힘듭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죠. 새나 곤충 나무 풀 등도 바람이 있어야 창공을 날거나 번식을 하거나 꽃을 피우게 되죠. 자연에서 바람이 없으면 그 자연은 망가질 것입니다. 사람도 나를 이끌어 주는 바람이 있어야 창공을 높고 깊게 날수 있다는 생각을 지을수 없습니다. 홀로의 노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는 바로 자연의 바람입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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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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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 <김종호 에세이> 이번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값싼 소주라는 술에 중독이 되어 병을 얻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올 봄 초 토요일 지인과 등산을 한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 속을 2시간 넘게 걸었지요. 지인이라고 하지만 사업관계로 만난 분입니다. 제가 신문사 운영 할때 제 신문에 광고를 무려 10년동안 전면으로 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실 상부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의 가슴엔 저울 두세개는 들어 있으니까요. 사업자는 생활 자체가 저울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을 운영할수 있겠죠. 서로 고마운 관계입니다. 이 분과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에서 건강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지요. 1년 전 만해도 청년 같던 그 분은 요즘 매일 각각 다른 약 3봉지나 먹는다고 합니다. 혈압 등 성인병입니다. 그중에 간장 약이 들어 있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생긴 증상으로 먹는 약입니다. 또 어깨와 무릅까지 아프다고 합니다. 이 증상은 혹시 골프에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골프 중단 권유를 한적이 있지요. 이 분은 사업이 크게 성공하여 부자입니다. 앞으로 30년을 벌지 않고 쓴다 해도 그 재물이 바닥이 나지 않고 더 불어날 상황입니다. 그런 분이 뭐가 부족해서 매일 소맥을 마실까요. 한번 마시면 소주 두세 병이니 말입니다. 병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요. 언젠가 만났을땐 건강을 위해 술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가워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었지요. 그때 얼굴을 보니 눈동자가 풀리고 두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것입니다. 만날 때마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도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날 그런 모습을 보니 처량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술을 마시게 되더군요. 물론 혼자는 마시지 않아요. 바람이 불면 바람 분다며 춤추는 장미를 불러내고, 겨우내 얼었던 참나무가 초록 얼굴을 내민다고 등산화 신은 진달래를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얼굴이 크고 목젖이 보이는 호박꽃을 불러내서 함께 술을 마시곤 합니다. 남자가 왜 술에 중독될까요? 분명 술이 나쁘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 마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가지 원인으로 분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방황이며 둘은 놀이가 유흥에 한정되고 자극적이라는 것이죠. 이에 대한 처방은 자신의 인연을 운명으로 봐야 하고, 놀이는 유흥을 중단하고 정서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하고 말입니다. 농담이라고 하지만 의미있는 말이지요. 이 말이 술을 마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분은 세상 어딘가에 자기 마음에 딱 드는 달, 자기와 참 잘 맞는 그런 달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 달을 찾고 있는 것 같았어요. 노을처럼 매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죠. 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는데 자꾸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두고 내가 누구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사내는 방황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바다를 떠돌며 인어를 찾는 갈매기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달을 만나 매일 수평선에서 노는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보호색이 강합니다. 그 보호색으로 인해 언행불일치가 나옵니다. 욕망도 빼놓을수 없죠. 그 욕망으로 인해 사기 질투 음해 폭력 등의 행동이 나옵니다.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믿음과 신용으로 만나는 관계 정립이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그 믿음은 한정적일지도 모르죠. 이 세상 살면서 '진실한 친구 1명만 있어도 행운' 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홀로 외롭게 사는 것이 운명인지도 모르죠. 필요할때마다 만났다가 이별을 하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어릴땐 부모형제가 세상의 다였는데, 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이 생겨나죠. 이렇게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친구관계가 거의 전부입니다. 직장에 다니면 직장 동료 또는 거래처 등의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해서 그때 그때 사람을 만난다' 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저 개인적으로 보면 알고 지내던 사람이 무려 수천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많았으나, 은퇴한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사람을 만납니다. 그 손가락으로 꼽히는 사람조차 이제 서서히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죠. 결국엔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끼리 어울립니다. 이 사람들도 집이 멀어지거나 다른 이유가 발생할 경우 만나지 않게 될 확률이 많을 것입니다. 형제간이라도 부산과 강릉 등 멀리 살 경우 얼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이렇다면 이 세상엔 '나와 마음이 딱 맞는 사람' 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 '지고 지순한 관계'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달을 만나고 인어를 만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 맞추어 가면서 살아간다' 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그러니 그 분처럼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분은 분명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엔 그런 사람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의 행동이 방황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을 마시며 즐기는 그 순간에도 방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잘 알면서도 마치 홀린 것처럼 반복적으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나 봅니다. 그것을 우리는 '중독'이라고 하죠. 담배와 술이 대표적입니다. 어떤 분은 경마를 하고 어떤 분은 도박까지 손을 댑니다. 중독의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습니다. 건강도 사업도 말이죠. 다행히 그분은 나이가 들면서 산책으로 소일 하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어쩌면 어쩔수 없어서 하는 경우라는 생각이 들죠. 늙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과거처럼 밤샘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젠가 함께 산책하기 위해 아침 일찍 그 분을 만나 보니 조찬을 집 근처 맞춤 식당에서 해결하더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제 정리를 하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역동적입니다. 순환적이죠. 바위처럼 늘 그곳에 있지 않죠. 물처럼 흐릅니다. 기대를 한만큼 실망이 꼭 그만큼 옵니다. 달이기를 바라면 달만큼, 인어이기를 바라면 그 인어만큼 실망이 옵니다. 때문에 기대를 줄이고 산다면 큰 방황이나 충격 없이 호수처럼 지낼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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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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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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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나라 복원사업
- <김종호 에세이> 박형, 어때요? 우리가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유럽 여성하고 한번 사귀고 싶지 않으세요? 농답이고요. 요즘 대한민국 남성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잘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남미 그리고 유럽 여성까지 한국 남성을 선호한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야 생각해 보면 쉽게 유추해 낼수 있습니다. 우선 나라가 잘 살면서 치안이 좋죠.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국토의 3면이 바다이고, 산천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음식문화가 다양합니다. 특히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마음이 봄처럼 자상하고 따뜻한가 봅니다. 어때요? 동의하십니까? 그렇다고 유럽 백인 여성까지 한국남자와 혼인하려고 줄을 서 있다니요. 참 별난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경험을 하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 좋은일이기는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유럽 웬만한 나라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니 꿈만 같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보다 먼저 살면서 나라 부흥에 기여한 선배 기업인 대통령 등 여러분에게 늘 큰절하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언제 유럽보다 잘 산 적이 있습니까? 우리 국민이 언제 그들에게 사람 대접 제대로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이제는 세상 어디를 가도 온통 대한민국이며 한글이라고 합니다. 또 케이팝의 인기가 세계 역사상 그동안 경험할수 없는 지경이라 하니 어깨가 저절로 으쓱 거립니다. 박형, 세상은 이렇게 순환한다고 봐야죠? 순환이 진리죠. 우리는 이 순환을 온 몸으로 늘 겪고 삽니다. 불행하게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는 그렇지가 않죠. 순환을 들고 살고 있는 우리가 잘 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순환의 이치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이미 생활로 접하면서 살죠. 순환이라는 것은 계절을 말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우리는 환절기라고 하는데, 이 환절기가 우리에게는 활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겨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데 어느누가 봄이 온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봄이 온다 해도 설렁탕 한그릇 먹듯 쉽게 옵니까? 어느땐 4월에도 겨울이 눈을 내려 존재감을 표시합니다. 계절을 권력으로 봐도, 계절을 기업으로 봐도, 계절을 한 사람의 삶으로 봐도 순환 과정에 환절기가 있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순환합니다. 우리는 이 순환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죠. 그래서 저는 순환하는 2호선 전철을 좋아합니다. 2호선 전철을 세상이라 묘사하죠. 아무리 매서운 겨울이라 해도 결국 봄이 오는 것은 운명이고 정해져 있습니다. 겨울이 아무리 무섭다 한들 겨울비는 내릴 것이며 얼음은 녹아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징기스칸 같은 큰 권력 또는 세력도 세월이 가면 쇠퇴합니다. 아무리 고려라는 바람에 등불 같은 왜소한 권력도 때가 되면 위대해 집니다. 요즘 몽골이 한국화 되어 가고 있다면서요? 징기스칸이 알면 피눈물을 흘리겠습니다. 박형, 우리나라도 한때 위대할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중국 대륙을 누비고 다녔지요. 요즘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수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장군이죠. 당시 수나라는 무려 113만명의 군대를 동원, 고구려로 쳐들어 왔는데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에게 패해 겨우 2천700명만 살아 돌아갔다고 하죠. 이 전쟁은 세계 전쟁 역사에서 찾아볼수 없는 대 승리라고 합니다. 초한지나 삼국지에서도 이 정도의 승리는 찾아볼수 없습니다. 이 즈음만 해도 우리 나라의 국토는 만주를 넘어 있었죠. 실제로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장수왕 무덤이 중국에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시시콜콜한 민족이 아닌 용맹하고 머리 좋은 위대한 민족입니다. 어쩌다가 신라가 통일 하면서 국토를 빼앗겼으나 다시 계절처럼 환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처지가 그동안 찌그러져 있다가 이제서야 겨우 허리를 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과거 우리땅인 중국 일부와 러시아 일부를 되찾아야 하죠. 그때가 대한민국은 나라 복원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갈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우선 국내 정치를 안정 시켜야 합니다. 화합해야죠. 갈등은 발전의 요소라고 말하지만 지금처럼 우리의 정치 갈등은 안됩니다. 정치인들만의 갈등이 아닌 온 국민의 정치 갈등은 문제가 있죠. 지나치면 말입니다. 정치 안정화 다음이 무엇일까요.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다음이 통일이죠. 통일 다음에 나라 복원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앞으로 세계는 미국과 중국 인도 브라질 처럼 덩치가 크다고 대장 노릇한다고 볼수 없습니다. 즉 덩치가 크다고 다 해결된다는 법은 없죠. 덩치가 크다고 모두 강하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강한자는 작더라도 싸움 기술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화합하여 잘 굴러가는 마차와 같습니다. 그러니 중국이니 미국이니 인도니 큰 나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기회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한 겨울에 봄이 올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지만 이 하나 제대로 깨닫고 사는 민족은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현상이 바로 일상이죠. 박형,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얼마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대명천지에 계엄으로 내란을 일으키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대국민 화합으로 나라복원 사업의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 김종호 건국대 졸업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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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나라 복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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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경 - 이제 말할수 있습니다
- <김종호 삼면경> 이제 말할수 있습니다 큰놈은 크게 먹고 작은놈은 작게 먹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밥조차 먹는 방법이 다르듯이 그 축적하기 위해 먹는 방법도 다릅니다 인간들의 말과 행동은 모두 자기를 향합니다 인간은 저울질의 명수입니다 인간은 속임수의 대가입니다 그런 인간 누구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아니 인간 자체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만약 존경 한다면 각자의 부모님이 될 것입니다 만약 존경한다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민들레 그리고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외로운 소나무가 될 것입니다 혹시 누구를 존경한다고 표현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그 사람의 어설픈 장사일 것입니다. 아니 장삿속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속성을 안다면 그래서 존경하지 않는다면 내가 인간이면서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예수도 인간이요 석가모니도 인간이요 우리 목사님도 인간이요 우리 스님도 인간이요 우리 선생님 사장님 형님 동생 친구 다 인간인데 그들도 역시 저울 한두개 들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스스로 바로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를 따르고 의존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당신을 현혹시켜서 자기의 배를 채우려는 그 수많은 말과 행동들, 그들에게서 그냥 배울 뿐이죠 그냥 보고 깨달을 뿐입니다 더이상 틈을 내주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보면 압니다 장마철 폭우로 떠내려 가는 물줄기를 보면 압니다 들판의 잡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게 됩니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 김종호 전 경기일보 인천일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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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산림청의 기막힌 사유림 규제 실태
- <김종호 칼럼> 최근 저희 유튜브 산림일보가 보도한 '국립 치유의 숲 활용 백서' 에 한 시청자분이 아래와 같은 참으로 뼈아픈 돌직구 댓글을 남겼다. "국가가 세금으로 화려한 시설을 지어놓고 정작 사유지는 꽁꽁 묶어 방치한다. 사유림 규제만 풀면 도시 인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치유의 숲을, 왜 국민들은 차를 타고 몇 시간씩 걸려 국가 시설로만 찾아가야 하는가." 내 산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산주들의 피눈물 나는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는 목소리다. 요즘 커피 한 잔 값으로 작은 산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산림 재테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왜 정작 일반인들은 산을 사고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지, 그 잔인한 진실을 짚어본다. 은퇴 후 나만의 작은 숲을 가꾸거나, 산림조합 조합원이 되어 임업 소득을 올리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산을 매입하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전 국토의 칠십 퍼센트가 산인 대한민국에서 임야는 아파트나 일반 토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인다. 하지만 멋진 숲을 경영해 보겠다는 로망은 산을 사는 순간, 산림청의 촘촘한 그물망 규제에 걸려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내 돈 주고 산 내 땅인데도, 나무 한 그루 마음대로 베지 못하고 길 하나 내지 못하는 철저한 규제와 감시 속에 갇히게 된다. 도시 인근의 사유림에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나 치유의 숲을 조성하고 싶어도, 허가 절차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허가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와 수많은 서류, 그리고 비용을 감당하다가 결국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평범한 일반 산주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시청자분의 지적대로, 산림청은 국민 세금을 수십, 수백억씩 쏟아부어 접근성 좋고 시설이 화려한 국립 휴양림과 치유의 숲을 도처에 짓고 있다. 국가가 세금으로 인프라를 독점하고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사유림 산주들의 자생력과 경쟁력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민간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더 가깝고, 더 훌륭한 산림 휴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가 규제라는 자물쇠로 잠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숨 막히는 규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임업 현장에서는 산림청의 거대한 보조금과 국책 사업 예산 쪼개기 네트워크에 줄을 댄 소수의 이른바 '기득권 카르텔'만이 그 규제의 장벽 안에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줄을 대지 못한 대다수의 사유림 산주들은 자산 가치 폭락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력감 속에 각자도생하고 있을 뿐이다. 산림 재테크의 진짜 성공은 단순히 싼값에 산을 사는 것에 있지 않다. 진짜 주인인 산주가 내 산을 자율적으로 경영하고, 그 속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산림청은 이제라도 세금으로 시장을 독점하며 생색내는 행정을 멈추어야 한다. 사유림에 채워진 무거운 규제의 족쇄를 과감히 풀고, 민간 산주들이 자율적으로 경제 수종을 심고 휴양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산을 산주에게 돌려주고 규제를 혁파하는 것, 그것만이 대한민국 산림을 진짜 돈이 되는 활기찬 경제 영토로 바꾸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 김종호산림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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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산림청의 기막힌 사유림 규제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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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밤나무 꽃 향기
- <김종호 산문> 밤나무 꽃 향기가 만발하는 5월이면 여인들이 바람이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차릴수 없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그 말에 대해 이해할수가 없으며 설령 이해 한다고 해도 인정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밤나무 만큼 진한 향기를 내는 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라일락 향기이다. 5월 봄이 무르익어갈 무렵 진달래 개나리 꽃 다 지고 목련과 장미가 꽃봉오리를 내밀즈음 산책이라도 하면 어디선가 진한 꽃향기가 느껴진다. 이때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흠흠 그 냄새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이제 그 향기가 밤나무 향기인줄 알고 밤나무를 찾지만 처음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저런 꽃도 아닌 꽃에서 이런 진한 향기가 나오다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후로 산책은 물론 운전하다 그 향기가 전해 오면 걸음을 멈추거나 차에서 내려 그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자연의 꽃들 중에서 느낄수 있는 이만한 향기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머리가 띵할 정도의 향기이다. 향기에 취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향기를 좋지 않게 해석하여 회자되고 있다. 이 현상을 2가지로 해석할수 있다. 먼저 향기가 너무 진하다 보니 역겨울수 있다. 두번째는 그 향기가 독특한 나머지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달라 어떤 개구쟁이 성향의 어른이 고약한 생각도 할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다. 아무리 좋고 훌륭한 것도 지나치면 싫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밤나무 꽃 향기도 그 향기가 향기의 도를 넘어 지나치다고 판단할수 있다. 향기가 느끼질듯 느껴지지 않을 듯, 그러니까 속옷이 보일듯 보이지 않을 듯 해야 벌나비들이 몰려들텐데, 노골적으로 보여줄 경우 놀라 도망가거나 이상한 상상을 할수 있는 것이다. 밤나무 꽃 향기는 다만 그런 차원일 뿐이다. 밤나무로서는 억울할 것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향기를 극도로 발산했을 뿐인데 말이다. 또 풍성하게 꿀을 마련해서 제공했을 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밤나무는 그 꽃이 아름답지 못해서 향기를 특별하게 돋보이게 했는지 모른다. 꽃도 예쁘고 향기도 진한 꽃을 보았는가. 능력도 있고 잘 생긴 사람이 어디 흔한가. 여기서 장미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장미는 그 자태가 꽃중의 꽃이라고 할수 있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향기는 결코 진하다고 할수 없다. 어쩌면 향기가 거의 없다고도 할수 있다. 장미는 그 아름다운 자태로 인해 자신감 때문인지 모른다. 밤나무는 그꽃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향기도 제일이요 꿀 또한 제일이다. 5월이 되어 밤나무 옆을 걸어보라. 향기도 진하지만 그 밤나무엔 온갓 벌과 나비들이 몰려와 잔치를 벌이고 있다. 반면 장미꽃엔 벌나비들이 몰려 오는가. 거의 없다. 향기로 벌나비들을 유혹하지도 않지만 벌나비가 좋아하는 꿀조차 준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모양이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못한가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것을 선택하겠는가. 내실이 좋은 밤나무인가. 곁모양은 아름답지만 내실이 없는 장미인가. 대부분 장미일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으면 가시까지 가졌겠는가. 그래도 장미를 선택할 것이다. 아마 장미를 선택하는 사람은 젊은 층이고 밤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일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꾸며야 할 것이다. 밤나무와 장미 두가지를 다 가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다 가질 수는 없어도 가지도록 노력을 하다보면 밤나무 꽃향기의 절반의 향기는 가질수 있고,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 근처는 갈수 있지 않겠는가. 살면서 내실을 다지고 외모 또한 꾸준히 가꾸며 살아야 할 것이다. - 김종호 건국대 졸업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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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밤나무 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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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에세이 -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 <김종호에세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하며 살아갑니다. 대화 시간이 5분씩 주어졌을때 5분이 지난 후 어떤 사람은 기분이 별로이고 어떤 사람은 다시 대화를 하고 싶어질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부정과 긍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을 하는데 휴대폰을 보거나 주로 말을 부정하는 사람, 또는 말을 하는데 집중하거나 대부분 공감하는 사람, 여러분은 이중 누구와 다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질까요. 백이면 백 모두 후자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필자는 매주 3회 주민센터에 나가 탁구를 칩니다. 1회당 2시간이 주어집니다. 단식과 복식이 있는데 복식이 제미가 더합니다. 게임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게임을 하면서 점수 가지고 다투는 것을 종종 볼수가 있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죠. 한 사람은 5대3이라 하고 다른 사람은 5대5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부정했으니 갈등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틀린 것이죠. 그러나 이 게임은 친선게임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죠. 그래서 필자는 게임 점수를 두고 갈등이 생기면 조건없이 동점부터 시작하기를 권장합니다. 3대3부터 말이죠. 우리는 대화 중에 따지지 말고 그냥 넘어가야 할 것이 있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 분명 있습니다.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은 놀이이거나 어떤 이익과 권익 명분 같은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탁구처럼 친선 게임일 때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부동산 계약이나 어떤 약속 등 나와 연관이 있는 대화일 경우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서도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냇가의 물이 맑은가 흐린가를 두고도 다투고, 내일 비가 올까 말까 를 두고도 말다툼을 벌입니다. 그중 우리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터부시 합니다. 다툼의 빈도가 많거나 크게 다툴수 있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면 다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은 다투기도 합니다. 필자가 가장 고약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입버릇처럼 또는 습관처럼 부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 입니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에 자기 생각을 접목시켜 '아니야 아닌데 그렇지 않아' 라고 말 합니다. 이 부정적인 습관성 반응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대화의 주제로 선정해서 주고 받는 말, 그 말속에 정답이 모두 있을까요? 예를 들면 바람에게 정답이 있을까요. 비와 눈 그리고 물 바다 숲과 나무 등에도 정답이 반드시 있을까요. 아니면 사람의 행위나 습관 속에도 정답이 있을까요. 확률로 보고 보편적으로 판단할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아니다 라는 전면적인 부정은 잘못된 대화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연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태동하는 시기엔 그야말로 자연 상태였죠. 그 자연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연구를 통해서 또는 깨달음을 통해 보편타당한 사실을 정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그렇고 수학이 그렇고 문자도 그렇습니다. 자연의 실타래 같은 오묘한 세계에서 우리 인간이 알아낸 정답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극소수 일 것입니다. 그 극소수라는 범위는 하늘의 별 같이 무한대를 대상으로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알아낸 사실은 무한대에서 먼지같은 아주 보이지도 않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답이라고 하는 정답도 완전한 정답이 아닌 변경될수 있는 정답이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우리의 지식을 살펴보죠. 우리 인간들은 한때 지구는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어 배를 타고 멀리가면 낭떨어지로 떨어진다는 속설을 믿었죠. 당시엔 이 사실이 정답이죠. 이때 어느 학자가 나와 천동설이란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움직이지 않는다. 또는 태양 달 별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하는 내용이 천동설입니다. 역시 당시엔 이 주장이 정답이였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오답으로 무시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동설을 제시하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지구와 다른 행성들은 그 주위를 공전한다. 지구는 하루에 한번 자전하며 1년 1회 태양을 공전한다. 또 별들의 움직임은 실제 움직임이 아니라 지구 자전에 의한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의 당시 입장은 어땠을까요. 아마 바보 취급 아니면 미친자로 낙인이 찍혔을 것입니다. 그후 지동설이 정답이 되었죠. 이렇게 정답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까요. 대화 중 상대가 '바람은 물속에서 올거야' 또는 '5 더하기 5의 정답은 15' 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요. 주의할 것은 '그래도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답은 내일엔 오답이 될수 있으며 우리가 사는 자연은 오묘하고 변화무쌍해서 정답으로 확정하기엔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죠. 때문에 이럴땐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고 질문하는 것이 대화의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상식이나 정보 또는 지식은 영원한 것이 아닐수 있죠. 잘못 알고 있거나 변할수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막힌 사람' 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닫힌 사람입니다. 이 마음이 닫힌 사람이 국가 지도자라면 국가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망할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조 말엽 대원군 같은 사람이죠. 또 개인이라면 그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한 나머지 실패자를 넘어 폐인도 될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상대방의 말에 대해 '아닐걸 아니야' 하는 부정적인 대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우리는 늘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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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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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에세이 -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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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산다는 것은
- <김종호 산문> 내가 아는 넝쿨 오이는 마디오이와 노각이 있다. 이들 오이는 같은 오이 종류이면서 상당히 다르다. 마디오이는 일찍 오이를 매달고 노각은 뒤늦게 오이를 매다는 것이 대표적인 다름이다. 또 노각이 마디오이 보다 그 몸집이 크다. 어떤 오이가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고 같은 오이이면서 생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디오이는 외래종이다. 노각은 조선오이라고 해서 우리 고유의 재래종인가 보다. 그렇다면 오랬동안 성장 환경이 달라서 지금의 특성이 생겼으리라. 마디오이는 뿌리가 안정되면서 바로 오이를 매단다. 막 떡잎에서 벗어나 잎이 서너장 생기는 시기이다. 마디마디 열려서 마디오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6월들어 무수히 오이를 매달다가 7월 장마가 시작되면 그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노균병이라는 이파리 마름병에 걸려 고사되고 만다. 6월이 마디오이의 전성기로 최적의 기간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잘 키우면 한 오이 줄기에서 1백개 가까이 오이를 생산할수도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생존 능력이다. 반면에 노각은 마디오이 끝마무리 단계인 7월이 다 되어서야 열리기 시작한다. 날자로 보자면 6월 중순부터 오이가 달린 꽃이 보인다. 이때쯤엔 노각의 원순 길이가 3미터는 되고 곁순을 제거하지 않으면 노각 숲을 이룬다. 그 성장이 충격적이다. 수많은 숫꽃을 피우기는 하지만 정작 오이가 달리는 암꽃은 찾아보기 힘드는 시기이다. 7월 중순이후를 여름이라고 본다면 이때의 노각무침은 그야말로 별미이다. 더운 여름에 상큼한 노각무침을 먹는 맛에 대해 친구는 '흙탕물이 빠져 나가고 맑은 물이 들어오는 느낌' 이라고 표현한다. 보통 노각무침의 그 맛은 아주 깔끔하다는 평이다. 아주 개운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때의 노각무침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재래시장을 일부러 방문 노각 몇개씩 구입한다. 노각 몇개를 배낭에 넣는 노인을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곤 한다. 노각은 마디오이와 달리 장마를 통해 노균병에 걸리더라도 생장점은 계속 자라면서 오이를 매단다. 노균병을 이겨내는 것이다. 우리는 마디오이를 제때에 따지 않고 내버려 두면 노각처럼 노랗게 되는데 이 오이를 늙은오이라고 말한다. 그 크기가 노각보다 좀 작다. 그렇다면 늙은 오이를 노각무침 대용으로 해서 먹으면 어떤가. 이렇게 먹을 경우 노각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때문에 노각무침은 꼭 노각으로 만든다. 조선시대엔 조선오이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이 하면 노각 밖에 없었는데 어느날 마디 오이가 들어와 조선오이 그 자리를 차지 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주변엔 마디오이가 대부분 차지했다. 마디 오이는 일찍 오이를 매달고 재배가 용이해서 그런 것일까. 이에따라 이제 노각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다. 수요가 적어 간간히 재배되어 유통되고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 식료품에 가봐도 조선오이는 찾아 보기 어렵다. 그래도 나이 드신 분 중에는 이 노각의 맛을 잊지 못해 해마다 텃밭에 재배하기도 한다. 필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좋아해서 해마다 텃밭에 5개정도는 키운다. 5개의 모종에서 잘 하면 25개의 노각을 얻을수 있다. 농작물의 생육은 특별한 것이 없다. 생육환경을 잘 조성해 주면 된다. 그밖에 병충해를 잡아 주어야 하는데 취미로 농사짓는 필자로서는 병충해는 포기했다. 생육환경이란 일단 거름을 풍족하게 주어야 한다. 흙반 거름반 이라고 주로 말한다. 그만큼 거름이 중요하다. 다음에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하고 물 역시 충분해야 한다. 이 정도면 노각은 엄청나게 많이 달린다. 노각이 열리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노각을 따 노란 껍질을 벗긴다음 칼국수 만큼의 두께로 자른다. 소금에 절인 다음 고추장에 식초를 넣어 시큼한 맛이 나오도록 버무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버무린 노각 무침은 아내는 물론 아들까지 좋아해서 난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노각 서너개는 순식간에 동이 난다. 서너개 요리해 보았자 껍질 벗기고 속 버리고 살을 가지고 버무리는데 그 양이 많지가 않다. 이 노각을 보면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린시절 농촌에서 자란 대학 친구이다. 어느날 당구를 친 다음 저녁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 노각 반찬이 나온 것이다. 그 친구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는 맛도 볼수가 없었다. 해마다 노각 철이 되면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이런 노각의 맛은 요즘 사람들에게 별로인것 같다. 노각을 찾아 볼수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음식도 달라진다. 어디 오이만이 그런가. 고구마 감자 호박 등 대부분의 작물에서 외래종이 들어와 우리 음식이 되었다. 이들 농작물은 재래종이 된 이후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노각 처럼 이종과 경쟁하다 밀린 품종도 많다. 식물들의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다. 기상천외한 방식이 많다. 민들래나 고들빼기 같은 식물은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면서 멀리 멀리 번식을 한다. 사과나 배 복숭아 등 과실나무들은 동물들의 입맛에 아주 잘 맞는 과즙을 만들어 낸다. 그 과즙을 먹게해서 씨앗을 널리 전파한다. 오이나 노각 등은 역시 맛으로 운명을 건 식물들이다. 그 과즙을 좋아하는 동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자손은 더욱 번식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각은 분명 외래종인 마디오이에게 밀려나는 형국이다. 특이한 맛을 추구하는 일부 사람이 찾기는 하지만 이제 시장에서조차 노각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이처럼 식물도 식물 나름대로 변화를 주지 않으면 유입된 품종에게 자리를 빼앗겨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보다. 멸종까지 이르게 될수도 있다니 식물이나 동물이나 세상 살기가 만만치가 않다.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대단해야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대한민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기온 변화에 잘 적응하며 사는 민족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DNA가 충분히 적립되어 있다. 적응은 번영 능력이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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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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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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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인간관계
- <김종호 산문> 인간관계, 이 말을 듣는순간 긴장이 됩니다. 한순간에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이제 다 손 놓고 먼산 바라보는 입장이지만, 이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이등병 군기처럼 마음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는 것이죠. 어느 동물은 군집해서 살기도 하고, 어느 동물은 홀로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은 분명 군집해서 사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강합니다. 강한 것은 군집해 사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무리 강해도 홀로 있으면 강하지 않죠. 군집된 사람들은 하늘도 놀라고 땅도 기절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군집된 상태라면 분명 개개의 운명은 그 군집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입니다. 군집 사회에서는 늘 인간관계가 성립됩니다. 거기에서 인간관계가 그만큼 중요하죠.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말을 들으면 헛웃음이 먼저 나오게 됩니다. 그 인간관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핵심은 단순한 것이 아니겠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여러가지잖아요. 사람을 만나면 1차로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꽃으로 비유하면 무슨 꽃이며 어떤 색인지 인지할 정도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겠죠. 외모는 키와 몸무게 얼굴 옷차림 등이 핵심일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옷차림은 변수가 많아요. 잘 차려 입어야 하는지 편하게 입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차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2차판단은 또 무엇인가요. 대화를 말할 것입니다. 대화를 꽃으로 비유하면 향기라고 정할께요. 역시 꽃의 향기도 1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죠. 또 외모와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장미는 참으로 아름다운데 향기가 없거나 미미합니다. 밤나무는 꽃은 보잘것 없으나 그 향기는 찬란합니다. 여기서 필자는 밤나무를 선호합니다. 외모는 보잘것 없으나 말에서 찬란한 향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옷은 수수하게 입었으나 대화를 해 보니 향기가 진동하는 사람, 참으로 멋진 분이죠. 그래서 외모가 먼저일까 말이 먼저일까를 놓고 따진다면 말이 먼저라고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모도 무시할수 없죠. 때문에 밤나무는 좋은 대인관계를 위해 외모를 가꾸는데도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꽃에서 나는 냄새는 대부분 향기이지만 사람에게서 나는 말의 냄새는 향기도 될수 있고 악취도 될수 있죠. 부드러운 바람도 될수 있고 늦가을 서리도 될수 있죠. 그것뿐인가요. 비온뒤 맑은 하늘이 될수 있고, 내일 만나는 연인처럼 설레임도 될수 있습니다. 그만큼 말은 그 사람의 비중 차원에서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말을 두고 폭력이라고 확대까지 할까요. 3차 판단은 행동양식이라고 하죠. 꽃으로 비유하면 꿀이 얼마나 있는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인격이라 해도 됩니다. 약속은 잘 지키는가, 배려는 많은가, 책임은 강한가, 존중심은 얼마나 있는가 등이 될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인 자립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도 그 사람의 인격이 될수가 있죠. 사람의 돈과 꽃의 꿀은 같은 맥락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돈을 선호하기 때문이고,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간 관계가 필수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이 복잡한 인간관계도 연령별로 성별로 또는 직업별로 모두 다르겠죠. 특히 인간관계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분야가 직업 중에서 사업분야가 될 것입니다. 필자는 종이 신문사를 창간해서 15년동안 운영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서 인간의 속성을 많이도 경험했죠. 철부지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봐요. 신문사 경영도 역시 인간관계가 중요했죠. 인사와 겸손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죽하면 현장에서는 15도로 고개 숙이고 다니라고 할까요. 사실 사업자 만나 인사만 잘 해도 광고가 나오고, 30도로 머리를 숙이면 광고가 연장됩니다. 더구나 '80도로 허리까지 숙이고 인사하면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고, 그 다음엔 광고주가 광고주를 줄줄이 모시고 온다' 라고 전 웃으며 말하곤 했지요. 여기서 깨달은 것은 '사업을 하려면 만만한 사람이 되자' 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만만하게 보아야 한다 는 것이죠. 첫 만남 부터 부담이 되면 안되고 계속 만나면서도 부담이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부담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투 억양 목소리톤 몸짓 손짓 얼굴표정 행동 약속 여러가지가 있지요. 특히 대화 내용입니다. 돈자랑 힘자랑 하면 안되죠. 아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도 사업이 성공하여 직원 수십명 거느리다 보면, 그때부터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몸놀림이 사장으로 변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입니다. 열대우림지역의 원숭이가 대장이 되면 등에 황금색의 털이 난다고 하죠. 이때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사업하는 사람은 만만하게 보여야 사람들이 따르고 정도 주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억지로 한다고 만만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업은 아무나 하나 장사는 아무나 하나' 라는 말이 생긴 모양입니다. 사업도 적성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죠. 인간관계가 좋아야 사업을 할수 있는 적성을 가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생활이 자기 적성에 잘 맞아 사람 만나는 그 시간 시간들을 즐기는 것이죠. 즐기면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억지로 웃고 인사하고 아양을 떨다보면 이것도 한두번이지 일년 이년 삼년 계속할수는 없는 것이죠. 병이 들어 죽을 고비를 맞이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목재신문 하면서 사업적으로 존경하고 싶은 사람 3분을 만났습니다. 모두 목재기업을하죠. 모두 목재 가공하시는 분입니다. 이 3분의 공통점은 인자하고 여유있고 자신감이 있고 아주 편하다는 것입니다. 만나면 우선 식사여부부터 묻고 사업에 이어 건강까지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표명합니다. 다음이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죠. 이야기 내내 필자에게 도움이 되는 광고나 구독 또는 어떤 정보를 제공합니다. 만나면 꼭 한두가지는 얻게 되죠. 그러니 자꾸 그분들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작은 기업이 아닙니다. 목재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이죠. 모두 기술기업입니다. 오죽하면 내 자식을 이 회사에 입사 시켜서 이분들의 인격과 사업마인드를 전수케 하려는 생각까지 하겠습니까. 몰론 저도 많이 배웠죠. 이분들에 대해 전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교수 선생님 아니면 우리 삼촌 같다 고 말입니다. 얼굴 표정이 그렇습니다. 그 얼굴 표정에서 장삿꾼 냄새가 전혀 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업 창업주로서 그만큼 일으켰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나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능구렁이들' 이라고 말입니다. 어느날 그분의 자녀 결혼식 청첩장이 우편으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그 현장을 보고 하마트면 놀라 뒤로 자빠질뻔 했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줄서 있는 사람들의 거리가 아마 100미터는 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님과 결혼하는 아들 그리고 딸과 사위 등 온가족이 일렬로 서서 큰 인사를 하며 손님을 맞이 하는 것도 인상 깊었죠.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홀로 살기는 힘듭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죠. 새나 곤충 나무 풀 등도 바람이 있어야 창공을 날거나 번식을 하거나 꽃을 피우게 되죠. 자연에서 바람이 없으면 그 자연은 망가질 것입니다. 사람도 나를 이끌어 주는 바람이 있어야 창공을 높고 깊게 날수 있다는 생각을 지을수 없습니다. 홀로의 노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는 바로 자연의 바람입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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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산문 -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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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 <김종호 에세이> 이번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값싼 소주라는 술에 중독이 되어 병을 얻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해 봅니다. 올 봄 초 토요일 지인과 등산을 한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 속을 2시간 넘게 걸었지요. 지인이라고 하지만 사업관계로 만난 분입니다. 제가 신문사 운영 할때 제 신문에 광고를 무려 10년동안 전면으로 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실 상부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의 가슴엔 저울 두세개는 들어 있으니까요. 사업자는 생활 자체가 저울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기업을 운영할수 있겠죠. 서로 고마운 관계입니다. 이 분과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에서 건강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지요. 1년 전 만해도 청년 같던 그 분은 요즘 매일 각각 다른 약 3봉지나 먹는다고 합니다. 혈압 등 성인병입니다. 그중에 간장 약이 들어 있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생긴 증상으로 먹는 약입니다. 또 어깨와 무릅까지 아프다고 합니다. 이 증상은 혹시 골프에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골프 중단 권유를 한적이 있지요. 이 분은 사업이 크게 성공하여 부자입니다. 앞으로 30년을 벌지 않고 쓴다 해도 그 재물이 바닥이 나지 않고 더 불어날 상황입니다. 그런 분이 뭐가 부족해서 매일 소맥을 마실까요. 한번 마시면 소주 두세 병이니 말입니다. 병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요. 언젠가 만났을땐 건강을 위해 술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가워 저녁 식사 자리를 만들었지요. 그때 얼굴을 보니 눈동자가 풀리고 두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것입니다. 만날 때마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도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날 그런 모습을 보니 처량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술을 마시게 되더군요. 물론 혼자는 마시지 않아요. 바람이 불면 바람 분다며 춤추는 장미를 불러내고, 겨우내 얼었던 참나무가 초록 얼굴을 내민다고 등산화 신은 진달래를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얼굴이 크고 목젖이 보이는 호박꽃을 불러내서 함께 술을 마시곤 합니다. 남자가 왜 술에 중독될까요? 분명 술이 나쁘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 마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가지 원인으로 분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방황이며 둘은 놀이가 유흥에 한정되고 자극적이라는 것이죠. 이에 대한 처방은 자신의 인연을 운명으로 봐야 하고, 놀이는 유흥을 중단하고 정서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하고 말입니다. 농담이라고 하지만 의미있는 말이지요. 이 말이 술을 마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분은 세상 어딘가에 자기 마음에 딱 드는 달, 자기와 참 잘 맞는 그런 달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 달을 찾고 있는 것 같았어요. 노을처럼 매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죠. 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는데 자꾸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두고 내가 누구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사내는 방황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바다를 떠돌며 인어를 찾는 갈매기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달을 만나 매일 수평선에서 노는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보호색이 강합니다. 그 보호색으로 인해 언행불일치가 나옵니다. 욕망도 빼놓을수 없죠. 그 욕망으로 인해 사기 질투 음해 폭력 등의 행동이 나옵니다.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믿음과 신용으로 만나는 관계 정립이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그 믿음은 한정적일지도 모르죠. 이 세상 살면서 '진실한 친구 1명만 있어도 행운' 이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홀로 외롭게 사는 것이 운명인지도 모르죠. 필요할때마다 만났다가 이별을 하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어릴땐 부모형제가 세상의 다였는데, 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들이 생겨나죠. 이렇게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친구관계가 거의 전부입니다. 직장에 다니면 직장 동료 또는 거래처 등의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해서 그때 그때 사람을 만난다' 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저 개인적으로 보면 알고 지내던 사람이 무려 수천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많았으나, 은퇴한 지금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사람을 만납니다. 그 손가락으로 꼽히는 사람조차 이제 서서히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죠. 결국엔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끼리 어울립니다. 이 사람들도 집이 멀어지거나 다른 이유가 발생할 경우 만나지 않게 될 확률이 많을 것입니다. 형제간이라도 부산과 강릉 등 멀리 살 경우 얼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이렇다면 이 세상엔 '나와 마음이 딱 맞는 사람' 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 '지고 지순한 관계'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달을 만나고 인어를 만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 맞추어 가면서 살아간다' 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그러니 그 분처럼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분은 분명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엔 그런 사람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자기의 행동이 방황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을 마시며 즐기는 그 순간에도 방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잘 알면서도 마치 홀린 것처럼 반복적으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나 봅니다. 그것을 우리는 '중독'이라고 하죠. 담배와 술이 대표적입니다. 어떤 분은 경마를 하고 어떤 분은 도박까지 손을 댑니다. 중독의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습니다. 건강도 사업도 말이죠. 다행히 그분은 나이가 들면서 산책으로 소일 하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어쩌면 어쩔수 없어서 하는 경우라는 생각이 들죠. 늙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과거처럼 밤샘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젠가 함께 산책하기 위해 아침 일찍 그 분을 만나 보니 조찬을 집 근처 맞춤 식당에서 해결하더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제 정리를 하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역동적입니다. 순환적이죠. 바위처럼 늘 그곳에 있지 않죠. 물처럼 흐릅니다. 기대를 한만큼 실망이 꼭 그만큼 옵니다. 달이기를 바라면 달만큼, 인어이기를 바라면 그 인어만큼 실망이 옵니다. 때문에 기대를 줄이고 산다면 큰 방황이나 충격 없이 호수처럼 지낼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 김종호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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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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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가족끼리 각 방 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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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나라 복원사업
- <김종호 에세이> 박형, 어때요? 우리가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유럽 여성하고 한번 사귀고 싶지 않으세요? 농답이고요. 요즘 대한민국 남성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잘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남미 그리고 유럽 여성까지 한국 남성을 선호한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야 생각해 보면 쉽게 유추해 낼수 있습니다. 우선 나라가 잘 살면서 치안이 좋죠.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국토의 3면이 바다이고, 산천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음식문화가 다양합니다. 특히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마음이 봄처럼 자상하고 따뜻한가 봅니다. 어때요? 동의하십니까? 그렇다고 유럽 백인 여성까지 한국남자와 혼인하려고 줄을 서 있다니요. 참 별난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경험을 하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 좋은일이기는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유럽 웬만한 나라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니 꿈만 같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보다 먼저 살면서 나라 부흥에 기여한 선배 기업인 대통령 등 여러분에게 늘 큰절하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언제 유럽보다 잘 산 적이 있습니까? 우리 국민이 언제 그들에게 사람 대접 제대로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이제는 세상 어디를 가도 온통 대한민국이며 한글이라고 합니다. 또 케이팝의 인기가 세계 역사상 그동안 경험할수 없는 지경이라 하니 어깨가 저절로 으쓱 거립니다. 박형, 세상은 이렇게 순환한다고 봐야죠? 순환이 진리죠. 우리는 이 순환을 온 몸으로 늘 겪고 삽니다. 불행하게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는 그렇지가 않죠. 순환을 들고 살고 있는 우리가 잘 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순환의 이치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이미 생활로 접하면서 살죠. 순환이라는 것은 계절을 말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우리는 환절기라고 하는데, 이 환절기가 우리에게는 활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겨울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데 어느누가 봄이 온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봄이 온다 해도 설렁탕 한그릇 먹듯 쉽게 옵니까? 어느땐 4월에도 겨울이 눈을 내려 존재감을 표시합니다. 계절을 권력으로 봐도, 계절을 기업으로 봐도, 계절을 한 사람의 삶으로 봐도 순환 과정에 환절기가 있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순환합니다. 우리는 이 순환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죠. 그래서 저는 순환하는 2호선 전철을 좋아합니다. 2호선 전철을 세상이라 묘사하죠. 아무리 매서운 겨울이라 해도 결국 봄이 오는 것은 운명이고 정해져 있습니다. 겨울이 아무리 무섭다 한들 겨울비는 내릴 것이며 얼음은 녹아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징기스칸 같은 큰 권력 또는 세력도 세월이 가면 쇠퇴합니다. 아무리 고려라는 바람에 등불 같은 왜소한 권력도 때가 되면 위대해 집니다. 요즘 몽골이 한국화 되어 가고 있다면서요? 징기스칸이 알면 피눈물을 흘리겠습니다. 박형, 우리나라도 한때 위대할 때가 있었지 않습니까? 중국 대륙을 누비고 다녔지요. 요즘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수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장군이죠. 당시 수나라는 무려 113만명의 군대를 동원, 고구려로 쳐들어 왔는데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에게 패해 겨우 2천700명만 살아 돌아갔다고 하죠. 이 전쟁은 세계 전쟁 역사에서 찾아볼수 없는 대 승리라고 합니다. 초한지나 삼국지에서도 이 정도의 승리는 찾아볼수 없습니다. 이 즈음만 해도 우리 나라의 국토는 만주를 넘어 있었죠. 실제로 중국여행을 하다보면 장수왕 무덤이 중국에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시시콜콜한 민족이 아닌 용맹하고 머리 좋은 위대한 민족입니다. 어쩌다가 신라가 통일 하면서 국토를 빼앗겼으나 다시 계절처럼 환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처지가 그동안 찌그러져 있다가 이제서야 겨우 허리를 펴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과거 우리땅인 중국 일부와 러시아 일부를 되찾아야 하죠. 그때가 대한민국은 나라 복원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갈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우선 국내 정치를 안정 시켜야 합니다. 화합해야죠. 갈등은 발전의 요소라고 말하지만 지금처럼 우리의 정치 갈등은 안됩니다. 정치인들만의 갈등이 아닌 온 국민의 정치 갈등은 문제가 있죠. 지나치면 말입니다. 정치 안정화 다음이 무엇일까요.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다음이 통일이죠. 통일 다음에 나라 복원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앞으로 세계는 미국과 중국 인도 브라질 처럼 덩치가 크다고 대장 노릇한다고 볼수 없습니다. 즉 덩치가 크다고 다 해결된다는 법은 없죠. 덩치가 크다고 모두 강하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강한자는 작더라도 싸움 기술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화합하여 잘 굴러가는 마차와 같습니다. 그러니 중국이니 미국이니 인도니 큰 나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가 되면 기회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한 겨울에 봄이 올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지만 이 하나 제대로 깨닫고 사는 민족은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현상이 바로 일상이죠. 박형,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얼마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대명천지에 계엄으로 내란을 일으키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대국민 화합으로 나라복원 사업의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 김종호 건국대 졸업 신문기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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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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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에세이 - 나라 복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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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경 - 이제 말할수 있습니다
- <김종호 삼면경> 이제 말할수 있습니다 큰놈은 크게 먹고 작은놈은 작게 먹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밥조차 먹는 방법이 다르듯이 그 축적하기 위해 먹는 방법도 다릅니다 인간들의 말과 행동은 모두 자기를 향합니다 인간은 저울질의 명수입니다 인간은 속임수의 대가입니다 그런 인간 누구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아니 인간 자체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만약 존경 한다면 각자의 부모님이 될 것입니다 만약 존경한다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민들레 그리고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외로운 소나무가 될 것입니다 혹시 누구를 존경한다고 표현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그 사람의 어설픈 장사일 것입니다. 아니 장삿속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속성을 안다면 그래서 존경하지 않는다면 내가 인간이면서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예수도 인간이요 석가모니도 인간이요 우리 목사님도 인간이요 우리 스님도 인간이요 우리 선생님 사장님 형님 동생 친구 다 인간인데 그들도 역시 저울 한두개 들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스스로 바로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를 따르고 의존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당신을 현혹시켜서 자기의 배를 채우려는 그 수많은 말과 행동들, 그들에게서 그냥 배울 뿐이죠 그냥 보고 깨달을 뿐입니다 더이상 틈을 내주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보면 압니다 장마철 폭우로 떠내려 가는 물줄기를 보면 압니다 들판의 잡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알게 됩니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 김종호 전 경기일보 인천일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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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경 - 이제 말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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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상대, 어려운상대
- 쉬운 상대, 어려운 상대/ 올해 농사는 초반부터 시행착오다. 아니 어쩌면 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뿌린 씨앗들이 발아가 되지 않는다. 강낭콩 노각 수세미 여주 생강 발아가 된 씨앗들은 좀 쉽다고 하는 열무 갓 쑥갓 아욱 옥수수 등이다. 강낭콩은 3월2일에 심었더니 싹이 나오면서 냉해를 입었고 나오지 않는 씨앗은 썩었다. 3월20일에 다시 심었다. 농사경력이 벌써 5년은 되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다. 씨앗들도 쉬운 씨앗이 있고 어려운 씨앗이 있다. 쉬운 씨앗이라면 싹이 잘 나오는 씨앗이며 어려운 씨앗이란 싹이 잘 나오지 않는 씨앗을 말한다. 여기서 사람 심리가 쉬운 씨앗은 대충 뿌리고 어려운 씨앗은 아주 정성을 다한다. 정성을 다한후 싹이 나오면 좋아 환호성을 지른다. 올해 3월2일에 도라지 씨앗을 파종했다. 성남 모란시장 모퉁이에 앉아 씨앗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오천원어치를 사 파종했는데 아주 잘 발아했다. 골을 잘 내어 파종하고 흙을 약간 덮어준 다음 작은 물조리개로 물을 뿌렸다. 그리고 습기 보존차원에서 비닐로 덮어 주었다. 그러나 노각이나 수세미 여주 생강은 파종한지 한달이 다 지나가는데 마른 땅에 금간 흔적조차 없다. 매일 들여다 보니 내 눈에서 싹이 나와 버렸다. 가만보면 씨앗조차 쉬운 것은 대충 상대하고, 어려운 것은 아주 정성을 들이니 사람도 살면서 좀 어려워질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무엇이든지 상대방의 요구에 쉽게 내주면 쉬운 상대로 대충상대해도 되는 사람이 될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의 요구에 쉽게 반응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씨앗들에게서 우리의 삶이 들여다 보인다. 글쓴이 -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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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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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상대, 어려운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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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본질
- 갈등의 본질/ 요즘 채소의 맛이 참으로 좋습니다. 대부분 3월초에 뿌린 상추 쑥갓 엇갈이 열무 등입니다. 지금이 솎아주는 시기입니다. 솎아주면서 이랑 사이에 다시 씨앗을 뿌린다면 6월까지 신선한 채소를 즐길수 있죠. 이 시기가 채소의 맛이 가장 좋을 때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솎은 채소이기 때문에 아주 연합니다. 더구나 벌레도 전혀 없습니다. 그야말로 4월과 5월은 청정의 달입니다. 벌레가 끼는 시기는 아마 6월이 지나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5월에 파종한다면 벌레와 병충해 때문에 농사를 망칠수도 있고 채소 맛도 좋지가 않습니다. 채소의 맛은 아마 기온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거기에 스스로 성장한 미나리, 이것을 돌미나리라고 하더군요. 이 돌미나리가 끝내 줍니다. 제 텃밭엔 돌미나리가 없는데 오늘 옆 할머니가 돌미나리를 주시더군요. 그래서 전 고구마 심을 밭을 쇠스랑으로 파 주고 아주 연한 쑥갓을 솎아 드렸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갈등은 있습니다. 물 때문이죠. 물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왕이면서 욕도 더 먹습니다. 요즘 전기차를 두고 중국이 히토류인지 뭔지 그 자원의 수출을 금지한다는 군요. 가만 보면 텃밭갈등이나 중국과 미국 갈등이나 그 근본은 아마 같을 것입니다. 인간이 있는 곳 아니 생명들이 사는 곳엔 반드시 갈등이 있게 되는군요. 그리고 이 인간의 갈등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세상을 바꾸게 됩니다. 글쓴이-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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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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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부 승격운동본부'를 만들면 어떨까요?
- '현장에 답이 있다.'를 외치며 발로 뛰는 청장! 산림 르네상스의 실현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를 법으로 담아낼 줄 아는 모습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겠지요. 이를 뒤받침하는 참모진의 활동도 대견하네요. 국민들이 탄원하여 산림부로 만들면 더할 나위 없을텐데! '산림부 승격운동본부'를 만들면 어떨까요?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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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부 승격운동본부'를 만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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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내 평탄지에 청정산업을 유치하면 어떨까?
- 횡설수설 헐벗은 민둥산에 나무를 심기시작한 1973년 74-76년은 밤나무 접과 조림목 육묘로 인연을 맺어 2019년까지 산림에서 먹고 살았었는데 예비역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해보면 한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것도 중요했지만 이제 그 숲을 우리들 생활속으로 갖고와 이용해야 하는데 도심지의 산은 이용이라는 면에서 개발되어 가는게 맞는걸까? 산속으로 우리의 이용공간을 이동하는게 좋지 않는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도로여건이 좋고 주변환경이 있는곳에 요양시설은 산림치유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도심의 급경사지 보다는 산림내 평탄지에 청정산업을 유치하면 어떨까? 산지의 이용체계를 획일화된 선단위보다는 구역별 특성을 활용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지역발전에 도움이 안될까 싶기도 하다 밤 늦은시간이다 페이스북- 심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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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내 평탄지에 청정산업을 유치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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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임도밀도, 매우 낮아 산불 화재에 취약점
- 우리나라에는 이런 임도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임도 설치율의 10%에 불과 하며, 우리나라의 임도 밀도는 1ha당 3.6으로 독일46, 오스트리아45, 일본13에 비해 매우 낮아 산불 화재에 취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백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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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임도밀도, 매우 낮아 산불 화재에 취약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