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칼럼> 산림청은 산림에 대한 대국민 인식전환을 위해 홍보에 치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산림에 대한 국민 인식이 잘못된 상태로 방치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지금처럼 '산림을 보니 좋다' 로 만족하려는가. 지금처럼 산림혁신이 막혀 산림후진국으로 남으려 하는가. 묻지 않을수 없다.
산림에 대한 잘못된 대국민 인식은 모두 산림청 책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바로 산림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산림경제 산림과학 기후위기 목재부족 등 시대 변화에 따라 또는 산림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과 책임은 꼭 산림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산림환경론자를 비롯 언론의 잘못된 인식이 더 우려되고 있다. 산림청은 이들의 입김에 막혀 산림혁신을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크기 때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산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산림청이 만들었다. 그 인식이 산림환경론자를 비롯 언론이 받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때는 우리나라 1960년 70년대 조림시기이다. 이 시기에 전쟁과 무단 벌목으로 헐벗은 우리나라 산림을 정상화 시키면서 많은 조림을 했다. 당시 '조림과 육림은 선이요 벌목은 죄' 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산을 푸르게 푸르게' 라는 구호를 기억하는가. 어느 기업에서 광고로 사용된 구호이지만, 이 구호가 당시 산림청의 산림정책과 맞물려 우리 국민 산림 인식에 크게 기여했다.
필자는 어린시절 나무심기를 위해 삽이나 괭이를 들고 산으로 갔다. 가서 나무를 심었다. 부모님이나 형님이 가셔야 하는데 그들은 바빠서 못가니 어린 내가 우리집 대표로 차출되어 산으로 가 나무를 심은 것이다.
이때 한그루의 나무라도 베다가 걸리면 경찰 또는 산림단속원에 끌려가 큰 곤혹을 치렀다. 때문에 당시 산림단속원은 경찰보다 더 무서웠다. 이런 환경에서 '산림의 나무는 베면 안되었으며 보아서 좋다' 라는 인식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후 그런 인식은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왜 그 인식이 잘못된 것인가. '산림은 보아서 좋다가 아니라 활용해서 좋다' 가 정답인 것이다. 당시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진리였다면, 산림에 나무가 빼곡한 지금은 나무를 활용하는 것이 진리다.
때문에 좋은 나무를 심어 일정한 시기가 지나 그 나무를 벌목하여 목재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산림에 대한 인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전환을 위해 산림청은 그동은 손을 놓고 있었다. 과거 인식에서 벗어나야 함에도 산림청조차 과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산림청의 어떤 임원은 육림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임도설치 숲가꾸기 수종갱신 등을 거부하는 것이다. 방치하면 산림의 나무들은 저절로 고사할 것은 고사하면서 잘 커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오답이다. 산림 선진국들은 이제 자연림보다는 인공림이 대다수다. 좋은 목재를 얻기 위해 경제수종을 조림하여 육림한 다음 벌목하여 사용하거나 수출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또는 땅 덩어리가 큰 나라들은 대부분 원목을 수출하고 있다. 독일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고, 뉴질랜드의 경우 뉴송이라 하여 인공림을 만들어 원목을 수출하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일본조차 일찍이 수종갱신에 성공하여 요즘 그 간벌목을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부끄럽게도 원목 또는 목재류 기준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토 중 산림이 65%인 대한민국이 산림에서 나오는 목재의 자립 비중이 겨우 5%에 불과한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가 없다.
임도는 어떤가. 헥타르당 5m도 안된다. 이런 산림청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이제부터라도 산림청은 산림과 산림경영 그리고 나무의 생장과정 등을 정립하여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후 시기가 도래하면 국민의 합의 과정을 거쳐 산림 대혁신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산림 대혁신은 바로 '대대적인 임도 개설, 대규모의 경제림 조성', 이 두가지이다. 임도개설과 경제 수종갱신으로 산림환경은 물론 산불예방 및 진화, 산림과학 등 산림의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 김종호
건국대 졸업
신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