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수요일/김종호
비는 아파트 벽을 어루만지기를 좋아한다 버드나무 가지를 뱀처럼 타는 것을 즐긴다 비가 내리는 날 안개로 덮힌 탄천변은 신선이 내려온 듯 우아하다. 나도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신선처럼 비의 음성을 듣고 싶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연약한 참나무가 되는 것이 맞다 비가 내 등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수도없이 경험한다
비는 출발한 곳이 같아도 떨어지는 곳은 다르다 탄천에 세모로 떨어지거나 한강에 네모로 안착한다 어떤비는 바다에 동그라미로 떨어져 금수저가 된다 또 비가 하늘을 기둥으로 삼고 살때부터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람이 되고 나무가 되고 꽃이 되는 꿈 강아지도 닭도 소도 말도 된다 세상은 자유로우며 활짝 열려있는 것을 비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노력이 아니고 인내도 아니고 그저 바람이 정한다 흡수되는 것은 운명이다 비 내리는 날에 어떤 의미를 둔 시점부터 비는 기다림의 대상이 되었다 비는 우리가 맞춰놓은 시점에 오지 않아 초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는 새벽에 내린 후 이미 그쳤다 지금은 파란 하늘이 우쭐거리며 바라본다 오리나무 길을 따라 걷는다 그래도 우산을 펼친다 우산을 펼치는 것은 코스모스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미 내린 비와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지금의 비는 어제의 그 비가 아니다 설레임의 비요 기다림의 비가 되었다 예쁜 나비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벌레들이 거미줄을 쳐 놓은 뽕나무도 보인다 밴치에 앉아있는 동안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와 나를 부르는 음성을 찾는다 그때는 들리지 않던 매미와 자동차 소음만 가득하다 코스모스는 비가 내려야 춤을 춘다 지금은 비가 없다
- 김종호시인
건국대 졸업
산림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용인 문학 현상공모 수혜
시집 물고기 날다


